노대통령은 금년도 조용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무슨 일로 소란스러울 것인가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이제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단련이 되었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 사회가 겪은 소란의 상당부분은 대체로 대통령과 그의 추종 세력이 앞장서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당연히 정부도 갖가지 갈등을 따라 오락가락하면서 한해를 보냈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중요한 한 영역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의 전부라거나 그것을 활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갈등의 생산과 그 소비 과정에서 투쟁 역량이 커진다고 믿는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는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조기에 해결하기보다 이를 유발하고 방치하거나 심지어 조장, 증폭시켜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술을 쓰기도 한다.
갈등 자체의 진행에 힘입어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그 해결과정에서 사회변동의 방향을 주도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촛불시위, 화물노조 파업, 민주당 분당, 위도사태 등 일련의 갈등 표출과 그 전개과정을 바라보면서 정부 여당이 과연 해결을 원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었다.
안보가 위태로워지고 경제가 곤두박질쳐도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갈등을 방조하는 행태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이러한 대처 방식의 한가운데에 소위 코드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코드는 검증된 기존 국정운영체제와 방식을 따르고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틀을 깨고 헐어버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요컨대 코드의 핵심은 해체(解體)로 맥을 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하는 일도 되는 일도 없다고 비판이 무성했지만, 그런 가운데 일어난 해체 쪽의 성과를 되짚어 보면 그 총체성과 일관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반미감정이 수위를 높이면서 한미동맹이 느슨해졌고 서부전선의 미2사단과 용산 미군기지의 한강이남 이전배치가 추진되면서 안보구도가 해체되고 있다.
시민단체가 직접민주주의의 명분을 빌어 국회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대의정치를 해체시키고 있으며, 대통령을 당선시킨 정당이 야당으로 전락하면서 정당정치가 해체되고 있다.
대선을 둘러싼 정치자금의 흑막이 벗겨지면서 정경유착의 고리가 벗겨질 수 있게 된 것은 지배구조 해체과정의 부산물이다.
경제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한 가운데 국내 간판기업들의 외자 몫이 절반을 넘어섰고, 중국을 비롯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줄을 이었다.
고용구조가 흔들리고 실업률이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면서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해체되고 있다.
노사간, 지역간 갈등이 머리와 이빨을 부딪치는 투쟁을 벌이면서 연일 거리를 메우고 있다.
자살과 이민이 늘어나는 것은 해체의 현상이자 결과이다.
이혼율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중파 방송을 필두로 어용 언론매체가 많은 독자를 가진 정론지들을 오히려 고립시키고 있다.
그리고 연말에는 수도이전(遷都)을 결정함으로써 가장 완강한 체제라고 할 국토의 공간구조까지 해체하겠다고 나섰다.
해체는 보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코드 인사로 빗대어지는 인사 원칙의 파괴, 학벌 파괴의 구호 아래 자행되는 학력무시는 지식사회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홍위병식 해체다.
어법의 파괴야말로 해체의 극치라 할만하다.
언어의 개념을 혼란시키는 것을 넘어 권위와 예절을 무너뜨림으로써 문화적 상징구조까지 파괴하니 말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놓고 '혁명'을 독려하고 국정간담회에서 '변화의 속도'를 주문할 만큼 해체는 가속화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생산과 건설보다는 기존 체제의 전면적 해체를 우선시키는 국정방향을 재확인하고 있다.
변화의 시대, 해체가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려야 하고, 해체 이후에 대한 합의된 그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없었건 감추어 두었건,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국민은 그걸 보길 원한다.
노대통령이 계속해서 해체를 추진하려 한다면 이제는 그 이후를 보여주는 합리적인 대안을 내어 놓아야 한다.
아니면 이 무분별한 해체과정을 중지해야 한다.
국민이 대안을 보지 못하는 해체작업은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대안 없는 해체작업이 결국 자기 자신까지 해체시키게 될 것을 우려한다.
유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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