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새로운 걸음을 내디딜 때는 지나온 발자취를 살펴야 한다.
때문에 무언가를 채우고 싶으면 먼저 버릴 줄을 알아야 한다.
갑신년 새로운 해가 솟았다.
대구.경북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 우리가 버릴 것은 무엇일까. 이의근 경북도지사와 최현복 대구흥사단 사무처장이 만나 새해 우리가 버리고 가야 할 것들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의근=새해 벽두부터 버리고 가야 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말을 꺼내려니까 부담이 큽니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 희망찬 내일을 위해 반성해야 할 부분은 필요하겠지요.
▲최현복=지난해는 지역에 대형참사, 수해 등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사고천국'이라는 반갑지 않은 오명까지 얻었어요. 발전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사고 뒷수습하느라 쏟아부은 느낌입니다.
안전불감증이 최고점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이=그동안 우리나라의 성장단계를 살펴보면 1970년대 들면서 잘살아보자는 일념하에 너무 고도성장에만 치우쳤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대충대충', '빨리빨리'에 중독된 셈이지요.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지금만 괜찮으면 된다는 중병에 걸렸던 겁니다.
지난해 김천 수해현장을 방문했을 때 수재민들은 물이 예전 원래의 제 갈길을 찾아 흐르게 되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하더군요. 당장의 개발이라는 욕심 때문에 물길을 인위적으로 바꾸고, 자연을 거스르는 마구잡이식의 개발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벌을 받았다는 얘기였어요.
▲최=지금은 안전과 친환경, 삶의 질을 생각하는 개발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지역은 대충대충 일을 하고 수습하는 것이 대범함인 양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지난해 우리는 U대회와 경주 엑스포를 통해 좋은 본보기를 얻지 않았습니까. 철저한 준비와 대비 덕분에 성공적으로 치러냈지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철저한 준비의식이 필요합니다.
대충대충, 빨리빨리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민들의 성향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지역에 팽배한 보수성 및 폐쇄성이 걸림돌이 아닐까요. 예로부터 뿌리깊은 유교문화의 본고장으로서 대구.경북은 강직한 선비정신 등 좋은 이미지가 더 강했어요. 그런데 최근엔 이런 장점보다 폐쇄성, 보수성 등 나쁜 의미로만 쓰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지역에 뿌리내린 선비문화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올곧은 선비정신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우리나라 민족문화의 주류를 이뤘던 영남학파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죠. 하지만 최 사무처장의 말처럼 요즘들어 좋은 의미보다는 절대로 변할 줄 모르는 옹고집 센 선비로만 비쳐지고 있지요. 그래야만 남자답고 대범하다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급변하는 시대조류에 맞는 21세기형 선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쁜 이미지는 과감히 버리고 올곧되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선비정신 말이지요.
▲최=요즘 우리 지역을 빗대 흔히 말하는 보수성은 가치중립적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내부적인 보수성은 지역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고취, 화합과 단결을 유도하지요. 하지만 진취적인 행동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단점은 과감히 버리는 지혜를 새해부터는 가졌으면 합니다.
참 조만간 총선도 다가오는데 정치분야에서도 우리의 보수성은 버릴 대상이지요. 매년 되풀이되는 '무임승차'라는 말을 올해는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얼마전 읽은 '징기스칸에게 배우는 CEO'라는 책에서 '사막에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는 구절이 있더군요. 징기스칸이 세계를 제패한 것은 성을 쌓지 않고 진출했기 때문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대구.경북시도민들의 생각도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정치건 경제건 이제는 성을 허물고 모두를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예전과 같이 혈연, 학연, 지연에 휘둘린다면 더이상의 발전은 없다고 봅니다.
이번 기회에 낡은 생각들을 툴툴 털어내고 전문성과 도덕성이라는 잣대로 진취적인 인물을 뽑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최=지난 10여년간 대구.경북의 발전이 더뎠던 이유 중의 상당 부분은 지역 출신 정치인들의 안이함에 있었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이라는 간판만 달면 무임승차를 할 수 있었죠. 또 출마자와 유권자 모두에게 정치인은 정치서비스를 하는 봉사자라는 생각보다 권력으로 각인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치=권력'이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고 건전한 선거문화를 싹틔울 수 있습니다.
▲이=경제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지역 경제가 낙후성을 면치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성을 쌓는데만 열중했기 때문입니다.
타지역이나 해외투자유치에 너무 인색했어요. 이방인은 절대 우리 땅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생각은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지역 발전의 정체만 가속화할 뿐 오히려 해가 되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보수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방인들에게 우리의 자산과 자본을 빼앗길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데 그 원인이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번 구미 4공단 해외기업유치는 괄목할만한 변화의 한 단면이겠지요.
▲최=공감합니다.
이방인에 대한 배타심이 높은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성향이 타지역 투자자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역에 끌여들여 같이 잘사는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첨단 디지털 산업단지인 구미 4공단의 해외투자유치를 위해 만난 많은 외국투자자들은 한결같이 대구.경북 지역에서 기업하기가 정말 힘이 든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직접적으로는 내륙이어서 항만과의 연계성이 어렵다, 문화생활 인프라와 연구원들을 위한 교육시설이 부족하다는 등 현실적인 한계점을 내세우는데, 실상은 지역의 폐쇄성을 염두해 둔 듯 했습니다.
더이상 지역의 기업을 살리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시대적인 발상이지요. 이러한 풍토가 외국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는 한 지역 경제는 계속 퇴보하게 될 것입니다.
▲최=부자가 존중받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정경유착이 없어지고 기업의 깨끗한 투명성이 우선된다는 가정하에서지요. 이러한 인식전환이 가능해졌을때 비로소 타지역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봅니다.
결국 시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문화가 지역문제 극복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그동안 체면만을 중시하며 나서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던 수동적인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젊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인 대구.경북이 21세기의 바람직한 지역상입니다.
▲이=대구.경북은 인재의 보고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폐쇄성이라는 채찍으로 젊고 진취적이었던 그들을 다른 지역으로 내몰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한 때입니다.
생동감있는 대구.경북을 위해, 지방화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방담자 약력〉
◇이의근 경북도지사
△영남대 경상대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1978) △부천시장(1986) △안양시장(1988) △대통령 행정수석비서관(1994)
◇최현복 대구흥사단 사무처장
△건국대 행정대학원 △나남출판사 편집장(1983) △대구 한의대 겸임교수(2001) △전국 에너지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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