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야릇하고 괴이한 발언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선택이 옳았기를 바란다.

특히 직업 선택에서 그렇다.

자기가 한때 종사했거나 종사하고 있는 직업이 타인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면 그보다 흐뭇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있는 필자는 요새 심경이 매우 거북하다.

정치판을 떠난 지 오래건만 그 경력이 나를 민망하게 한다.

지인을 만나면"당신도 저랬어?"라는 반농조 질문이고, 강의실의 젊은이들은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큰 돈을 받아야 하나요?"라며 나이브하게 묻는다.

게다가 검찰에 불려가는 사람들 중에는 안면 있는 이들도 있어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다.

국회의원이란 직업과 그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은 서구 민주주의와 그 역사를 같이한다고 보지만 19세기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단어 하나로 국회의원들에게 퍼부은 독설은 그 중에서도 백미라고 하겠다.

국회의원의 자질에 대해 말하던 그가 "어떤 의원은 사기꾼이더군"이라고 평했는데 이 말이 그대로 신문에 실렸다.

그러자 국회는 벌집 쑤신 것처럼 들끓었고 의원들은 일제히 그에게 이 보도의 진위 여부를 밝히거나 잘못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며칠 후 뉴욕타임스에는 마크 트웨인의 특별성명이 게재되었다.

"본인은 문제가 된 본인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수정합니다.

'미국 국회의 어떤 의원은 사기꾼이 아닙니다'".

마크 트웨인은 자기가 한 발언에다가 '아니다(not)'라는 단어 하나만 덧붙여서'어떤 의원'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사기꾼이라는 암시를 했다.

의원들로서는 해명을 받으려다가 오히려 망신을 몇 갑절로 더한 셈이었다.

지금 우리 국회의원들이 당하는 망신과 오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TV마이크를 잡은 시장 아줌마들이 일언지하에 "모두 도둑×들"이라고 외치지만 발언정정이나 보도정정을 요구하는 의원도 없고, 이 말을 과하다고 여기는 시청자도 없다.

작금의 사태는 일과성 파동으로 지나간 여느 때의 정치비리 사건과는 그 폭과 무게가 다르다.

국민적 분노의 면에서도 그렇다.

언론에서는 구속된 의원의 숫자가 사상 최대로 많다는 점을 특기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시각이다.

국회의원 외에 여야의 사무처나 선거대책본부, 후원회 등 정치의 몸통이 수사선상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 현직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된 데 이어 지난 12월 29일 검찰발표에서 언급된 것과 관련하여 노 대통령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 작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처럼 검찰이나 특검이 할 일은 참으로 많다.

게다가 그 일들은 모두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에 부치더라도 수사의 폭을 좁히거나 필요한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국민의 시선은 지금 날카로워져 있다.

국민들은 도덕성 결핍의 이 정치권이 결국 어느 단계쯤에 가서는 '공멸'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적당한 선에서 이번 사태를 덮으려 할 것이 아닌가를 우려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최근 여야 두 수뇌의 언동이 어쩐지 야릇하다,

우선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수사의 불공정론을 꺼내는 횟수가 유별나게 잦다.

수사의 공정은 물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 대표의 공정수사 요구가 '청와대-여권도 철저 조사하라'로 연결된다면 모르지만, '한나라당 조사를 더 이상 하지 말라. 여야간에 여기서 그치자'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안 될 말이다.

또 하나.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은 소도둑, 우리는 닭서리" 발언은 야릇함을 넘어 괴이하기까지 하다.

두 경우를 비교해 보자는 뜻에서 한 말인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00억 원을 소 한 마리에 견주고 50억 원을 닭 한 마리에 견준 것은 사안의 규모를 턱없이 평가절하한 것이다.

예로부터 닭서리는 주인의 관용을 받아온 게 우리 민족의 미덕이란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은 여권과 관련한 수사에서 검찰에 어떤 가이드라인을 준 의미가 있다.

이른바 '10분의 1' 발언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다.

수사의 범위나 심도, 그리고 양형(量刑)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이런 시각은 또 사건당사자들의 죄책감을 그만큼 얼버무리고 정치인들의 정당운영 개선 의지도 따라서 무디게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우리가 가야할 길도 아니고, 오늘의 사태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는 길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비서실 워크숍에서 "나는 부조리의 핵심에 들어와 유착과 부조리의 핵심적 구조를 해체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부조리 척결의 목표를 진정으로 달성하려면 검찰이 소신대로 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그 지름길일 것이다.

최재욱 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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