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속 전쟁.학살은 유흥거리"

신문.TV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학살, 기아 등 처참한 모습을 숨가쁘게 안방에 전달한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잔혹한 장면을 보면서도 무덤덤하다.

그 이유는 뭘까.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71.여)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TV뉴스를 통해 전쟁장면이 영화나 게임처럼 가정 깊숙이 스며들면서, 세계 곳곳의 끔찍한 참사나 잔인한 폭력조차 현대인들에게 진부한 것 또는 익숙한 대상이며 완전한 '타인의 고통'이 돼버렸다".

최근 한국어판이 나온 '타인의 고통'(이재원 옮김.이후 펴냄)에서 손택은 대량 복제된 이미지들이 어떻게 인간의 감수성을 파괴하는지를 날카롭게 추적하고 있다.

지난 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로부터 평화상을 받은 손택은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 '강조해야 할 것' 등을 통해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9.11 이후 미국 부시정권이 감행한 반테러전쟁을 '미국의 파워를 확대하기 위한 권한 부여의 표시일뿐'이라며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이라크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해 미국의 한 보수단체로부터 '미국을 앞장서 비난하는 인사'로 지목받기도 했다.

손택의 관찰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여 있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발달 덕분에 사람들은 텔레비전, 컴퓨터, PDA 등의 작은 화면을 통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의 '이미지'를 속속들이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잔혹한 이미지들의 범람이 곧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경각심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손택의 주장이다.

"이미지 과잉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립니다.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된다면 결국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손택은 "무엇보다 이 세계를 거짓된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투명성(Transparency)'이란 태도를 갖고 우리가 이미지를 통해서 본 '재현된' 현실과 '실제' 현실의 참담함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쳐다볼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봐야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나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고, 타인의 고통에 연민만을 베푸는 것을 그만두고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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