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딱 딱' 나뭇가지 잘라내는 소리가 한적한 산골의 적막을 가른다.
전정가위의 금속성 파열음이 해빙기의 얼음장 깨지는 소리처럼 경쾌하다.
잘려나간 가지들은 패잔병의 모습을 하고 이리저리 흩어지며 나뒹군다.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질러대는 것 같은 환청이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등성이를 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며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 그리고 졸졸졸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가 한데 뒤섞여 결 고운 교향악으로 들려온다.
거기다 이 대자연의 음향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가위 소리의 이질적인 음색이 또 묘한 화성을 이룬다.
자연과 인공의 뜻하지 않은 만남, 이처럼 자연에 인공이 어우러져도 하나의 기막힌 화음을 자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지금 나는 물이 좋기로 이름난 가야산 북쪽 자락인 포천 계곡의 그 깊디깊은 골짜기, 그리 크지 않은 산비알 농장- 말이 농장이지 남들의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지 모르는-에서 한창 가지치기에 열중해 있다.
그러니까 몇 해 전부터였던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 하나 지어 두고 유유자적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삶을 흠모하며 어설프게 흉내라도 내고 싶어, 훗날 달팽이집 같은 자그마한 집필 공간 하나 마련할 요량으로 이곳에다 대추며 매실 그리고 자두 같은 과실나무 수십 그루를 심어 두고 가꾸어 왔다.
해마다 하는 일이건만 언제나 조련치가 않다.
올해도 또 무성하게 번 가지들을 쳐 주는 수고를 마다할 수 없어 이렇게 서툰 가위질로 땀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매몰차게 잘라 버려야 하는데, 자꾸만 손이 오그라든다.
'이리 마음이 여려서는 안 되지. 끊어내면 끊어낸 만큼 열매는 더욱 충실해질 것이 아닌가'. 거듭거듭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게 그리 뜻 같지가 않다.
꼭 내 수족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듯한 아픔 때문이다.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달아 수확을 보고 싶어 하는 부질없는 욕심이 은연 중에 내 의지를 꺾고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무릇 나무의 가지치기에서만큼은 용서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어쨌든지 모질고 독해야 한다.
그것이 나무를 위하고 나무를 살리는 길이다.
어설프게 관용을 베풀다가는 외려 수형(樹形)을 망치게 되고, 그래서 애초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만 못하다.
우리들 삶이 또한 이와 무엇이 다르랴. 사람은 항용 일상에서, 무성한 나무처럼 자질구레한 욕망의 곁가지들을 얼마나 많이 주렁주렁 달고 살아가는가를 미처 깨닫지 못한다.
어쨌거나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고 더 나은 자리를 탐하며 더 큰 명성을 꿈꾼다.
아흔 아홉 개를 가지면, 겨우 하나밖에 갖지 못한 타인으로부터 그걸 빼앗아 결국 백 개를 마저 채우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네 보통사람의 못 말리는 속물근성, 이 탐욕의 끝이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그것은 욕망의 뿌리가 드렁칡처럼 깊고 또 질긴 까닭이다
탐욕의 가마솥이 끓어오르려 할 적마다 우리 앞서 죽은 자들의 삶을 조용히 돌아볼 일이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말없는 스승으로 남는 까닭이다.
하늘 끝까지 닿을 탐욕의 마음으로 아등바등한대도 결국은 죽음으로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것, 죽어 한 줌의 흙이 됨으로써 우리들 그리도 가지려 발버둥쳤고 이루려 꿈꾸었던 모든 욕망들이 저 하늘의 뜬구름처럼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이따금 죽은 자의 장례식은 잠깐잠깐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 깨닫게 해준다.
마음 가운데 웃자란 욕망의 곁가지들을 부지런히 도려내야 중심을 이루고 있는 줄기가 튼실해지는 법이다.
그러기에 우리 옛 선사(禪師)들도, 현철(賢哲)들도 하나같이 고스란히 생애를 걸고 이 절대의 이치를 아프게 아프게 노래했었는가 보다.
혹은 귀에 닿을락 말락한 게송(偈頌)으로 혹은 가슴을 적시는 글줄로.
그 소중한 가르침을 고맙게도 나는 오늘 이 가지치기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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