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고 몸을 움츠리지만 말고 더 넓은 바다로 가보자. 그냥 바닷가에 서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지만 육지를 벗어나 섬으로 떠나자. 쪽빛 바다위에 떠 있는 섬. 생각만 해도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남해는 섬들의 천국. 사량도를 찾아 나선다.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해안도로를 마음껏 드라이브도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오치터미널에서 출발한 사량호에 차를 싣고 선실에 들어서니 주민인 듯한 아주머니 몇 명과 사량도 지리산 산행을 온 외지인 몇이 바닥에 앉거나 누워있다. 전기 온돌을 설치한 바닥에 등짝을 대고 누워보니 제법 따뜻하다. 배가 출발하자 갑판에 오른다. 곧 일출이 시작될 것 같은데 해는 보이지 않고 싸한 새벽공기를 감싼 해무가 푸르스름한 바다에 낮게 깔려 있다. 비릿한 냄새와 짠 소금내가 묻어나는 바다 한가운데서 아침을 맞는 재미도 남다르다. 이런 분위기라면 굳이 일출이 없어도 좋겠다.
여름철 떼거리로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없는 겨울 섬은 고즈녁하다. 하도에 있는 덕동 터미널에 내린다. 배가 들어서자 노란색의 어린이집 미니버스가 서둘러 배에 들어선다. 아침 일찍 뭍으로 어린이들을 실어 나르나 보다. 섬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자식교육이다. 뭍에서 그렇듯이 섬마을 어린이들도 하루종일 학원에서 보낸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덕동터미널을 오른쪽에 두고 섬 일주도로를 달린다. 대곡산 자락으로 산길이 나 있다. 왼쪽으로 낭떠러지를 끼고 달리는 산길이다. 섬에서 산길을 달리는 재미가 제법이다. 언덕을 돌아서자 옆으로만 보이던 바다가 눈앞에도 펼쳐진다. 조금 전 떠오른 해가 쪽빛 바다에 반사돼 눈이 부시다. 은빛 비단을 깔아 놓은 듯한 바다에 굴양식을 위한 부구(浮具)가 점점이 박혀 있고 막 출항한 어선이 물살을 가르고 있다.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그 광경에 취해 한참을 서 있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정말 위대하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섬으로 달려온 노고를 여행 초입에 벌써 보상받는 기분이다. 하도에는 자갈이 많아 붙여진 작살금, 동네가 오목한곳에 위치해 해가 빨리 진다고 붙여진 먹방 등 이름조차도 섬마을을 닮은 작은 마을들이 구비마다 들어서 있다.
산굽이를 돌고 돌아 양지리 백학마을에 들어선다. 산위에서 바라보는 소담한 어촌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평화롭다. 양철지붕에 파란색과 붉은색 페인트칠을 했고 그 뒤로 평온한 바다가 보이고 방파제 양 끝에 두 개의 등대가 서 있다. 등대뒤에 섬들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은개, 외지, 읍포를 거쳐 출발지인 덕동 터미널에 도착한다. 섬마을을 한바퀴 휘 돌아보는데 아주 여유있게 두시간 가량 걸렸다. 두시간마다 들어오는 배가 도착할 시간이다.
상도에서 또 다른 섬을 둘러볼 작정이다. 상도에 있는 사량터미널에 내린다. 하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하도가 시골 깡촌의 이미지를 가졌다면 상도는 제법 도회지 냄새가 난다. 크지 않은 섬에 있을 건 다 있다. 면사무소, 초등학교, 파출소, 미용실, 여관, 다방... 터미널앞에 대부분의 시설들이 쭉 늘어서 있다.
사량섬 유스호스텔과 해수 사우나도 있다. 상도도 작은 섬이기에 차로 역시 한시간 정도면 충분하고 느긋하게 돌아도 두시간이면 족하다. 해수온천을 왼쪽으로 끼고 섬의 북서쪽 끝마을인 내지로 향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그림같은 마을들이 섬을 둘러싸고 있다. 사량도 유일의 대항해수욕장을 지나면 답포 마을이다. 바다와 바로 붙어 있듯이 마을이 있고 지붕들이 해풍을 피해 돌담밑으로 숨었다. 방풍림으로 조성된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 푸른 바다와 어울려 그림같은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내지에는 사량초등학교 내지분교가 있다. 총 학생수 8명, 분교장을 포함한 섬마을 선생님이 3분 계신다. 학교가 궁금해 문을 두드리니 단층건물 중간에 있는 교무실에서 당직을 서던 서영우선생님이 반갑게 맞는다. "젊은 사람들이 뭍으로 나가는 바람에 갈수록 학생들이 준다"는 서선생님은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해가 질 때까지 학교에 남아 운동장에서 논다"며 집에 일찍 보내봐야 바다밖에 볼 것이 없는 학생들이 학교로 다시 온다고 한다. 내지분교에는 2개학년이 한 교실에서 복식수업을 한다. 돈지분교도 학생수는 11명밖에 없다고 한다.
내지에서 돈지로 가는 길이 위험해, 왔던 길을 되돌아 돈지로 향한다. 돈지로 가는 길은 하도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갈 수 있다. 우뚝 솟은 하도의 칠현산을 멀리서 감상하며 상도와 하도를 가로지르는 호수같은 해협을 끼고 달리는 길이다.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돈지는 기암괴석의 지리산 아랫자락에 위치해 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돈지 분교가 있고 그 길 옆으로 난 등산로가 내지와 더불어 지리산을 오르는 가장 빠른길이다. 대부분의 산행이 돈지에서 시작된다. 마을회관앞에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고 어민들이 모여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다. 섬마을 붕어빵을 한봉지 사들었다. 이제 바다위에 떠 있는 지리산 산행을 할 시간이다.
◇가는길: 구마선→ 마산→ 고성→ 통영→ 도산면 가오치 선착장(2시간 반가량 소요)
◇새벽일찍 출발한다면 사량도 일주와 산행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가오치에서 사량도로 향하는 첫배는 7시반. 두시간 간격으로 있으며 차량운임가격은 13,000원이며 승선요금은 3,300원. 뭍으로 나오는 마지막 배는 5시 반에 있다. 시간을 놓치면 하루밤 자고 와야 한다. (가오치 선착장 055-647-0147)
사진.글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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