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요시무네식 개혁을 배우라

무섭고 찜찜한 세상이 돼간다.

퇴근길 공무원들이 밥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 가볍게 주고받은 안줏거리 얘기가 대통령 귀에까지 들어가고 그말이 불경했다고 장관 목까지 달아나는 세상은 분명 무서운 세상이다.

'낮말' 할때는 뒤에 '새'가 듣고 있는지 둘러보고 '밤말' 할때는 곁에 '쥐'가 없는지 살펴야 된다면 역시 찜찜한 사회다.

공직사회에서 밥 한끼 먹을때마다 옆 식탁에 볼펜형 녹음기라도 품고 앉은 밀고자가 있는지 떨어야 하고 함께 소주잔 들고 시중에 유행한다는 '노○○!' 건배를 했던 동료가 밀고자는 아닌지 의심케 된다면 무섭고 찜찜한 세상이 아니고 무언가. 이번 외교부 장관 경질을 보면서 대미관계나 자주론 시비 같은 정치적 갈등문제 보다는 밥자리 말이 권력 핵심부에 보고되는 찜찜함과 명색 개혁정권이 말단 부하의 비판쯤 삭여들어 줄 만한 배포도 없이 국가를 개혁하려드는가 하는 아쉬움이 더 걱정스레 느껴지는 것도 그런 세상분위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의 결집과 그 구성원의 통합의 힘이 어느때 보다 절실히 필요할 개혁정부가 과민한 인사권 행사로 공직사회에 불신과 반목의 씨를 뿌림으로써 서로서로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3불(三不) 집단'으로 몰아가 버린것은 역개혁적인 자충수였다.

노 정권의 개혁이 아직도 설익고 있음은 이번 외교부 사태에서 보듯이 큰 가슴으로 개혁의 큰 그림을 그려내기 보다는 자파세력 비판에는 언론이든 공직자든 자그만 시비도 어김없이 '발끈'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개혁 강박관념에 빠진듯한 옹색함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가끔 노무현 개혁정권이 고금을 통해 성공된 개혁정권에 대한 준비된 학습을 제대로 해보기나 했는지 의문이 갈때가 있다.

예를 하나 찾아 노 정권의 개혁정부를 생각해 보자. 도쿠가와 막부 300년 역사상 '에도시대의 3대 개혁'으로 꼽히는 '간세이(寬政) 개혁' '덴포(天保) 개혁' '교호(享保) 개혁' 중 가장 모범적인 개혁이라는 교호개혁의 지도자였던 8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다.

그의 개혁은 노무현 정권의 개혁과 형식은 닮았으면서도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요시무네 개혁의 원칙은 4가지였다.

첫째 그는 집권전 기존 막부 조직이나 인사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두번째 그는 관료 등용을 코드 대신 직접 지식면담을 통해 실력위주로 뽑았다.

세번째 투서함을 만들어 민의(民意)를 수집한뒤 정치에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측근을 시켜 개혁 협력자와 반발자를 조사시키되 협력정도만 파악하고 처벌 대신 동참을 유도했다.

그 결과 첫번째와 두번째 원칙을 지킨 효과로 개혁 초반부터 보수의 반발과 역풍을 맞지 않고도 개혁을 끌고 나아갈 수 있었다.

기존 조직의 관료들은 인사의 칼날을 대기 전에 오히려 자진 사임으로 개혁을 도와 주었다.

그 사임사유가 멋있었다.

그것은 요시무네 개혁성공의 이유가 담겨있는 말이기도했다.

-"저처럼 고루한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은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사임하겠습니다"-

사심없는 요시무네의 개혁노선에 공감하여 승복한다는 말이다.

민의 수집 역시 투서함을 만들었지만 반드시 이름과 주소가 있는 투서만을 접수했고 비방이나 험담하는 내용은 아예 접수도 하지 않는 원칙을 공포했다.

네티즌 여론몰이나 홍위병식 비방공격형 민의의 수집과는 근본적인 거리가 있었다

개혁협력도(度)조사 역시 유능한 기존 전문 관료들의 경륜과 건의, 주장을 과분하리 만큼 충분히 수용해주고 반영해주면서 개혁을 끌고 나갔다.

집권후 단 두명, 자신이 택한 인물을 뽑아 쓸때도 기존 막부 관료들의 동의를 얻고서야 뽑아썼다.

협력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비협력을 이유로 처벌한 예도 없었다.

인사의 칼자루에 손도대지 않고 스스로 '도저히 따라갈 수없어 물러나겠다'며 개혁을 지지하면서 기분좋게 물러나게 하는 강한 정부를 만들어낸 것이다.

모나지 않고 떠벌이지 않는 개혁 정부의 조용한 참 개혁의 모델에서 바로 요시무네 와 노무현이라는 두 개혁지도자의 역량 차이를 보게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않다.

참여정부가 요시무네식 개혁에서 한 수 배울 속넓은 아량이 담배씨만큼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우리에게는 성공된 개혁의 희망은 남아있다.

공직기강? 물론 중요하다.

부하의 기강이 필요하다면 먼저 윗물부터 맑아라. 개혁주체는 몇억씩 먹고 부하의 책상서랍에 든 기십만원만 닦달하는 개혁으로는 기강이 설 수없다.

노 대통령의 지혜로운 참개혁을 간곡히 충고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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