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부부-(4)바람난 가족

"당신의 결혼생활은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해 각종 뉴스 및 미디어는 기혼 남녀들에게 이런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이는 결혼생활 전반에 대한 재점검인 동시에 흔들리는 '가족주의'를 반영하고 있는 질문이다.

'애인 없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취급 받는다'는 한 40대 직장남성의 말처럼 이젠 외도가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스와핑, 휴대전화,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쿨하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는' 기혼남녀가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진단해본다.

# 일부일처제?

30대 초반의 김모씨는 주변에서 가정에 충실한 가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김씨에겐 애인이 둘이나 있다.

집 밖에선 애인과 번갈아 만나며 즐기지만 가정에선 언제나 '반듯한' 남편의 자리로 돌아온다.

김씨는 애인들이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조바심내며 지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인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김씨는 "애인을 두고 있지만 가정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데 무슨 문제가 되냐"고 반문한다.

지난해 명필름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기혼남녀 3천857명(남성 2천175명, 여성 1천682명)의 성생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성의 42.2%, 여성의 19.9%가 배우자 이외의 애인을 사귀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특히 50대 이상 남성의 50.9%, 40대 이상 여성의 23.4%가 그렇다고 대답해 높은 비율을 보였다.

또 부부의 성생활이 즐겁다는 응답이 남성 39.5%, 여성 36.4%로 다소 많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관계를 갖고 싶다는 응답도 남성의 83.8%, 여성의 49.4%에 이르고 있다.

배우자가 외도를 한다면 이혼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이 이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씨의 경우처럼 부부간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서도 애인을 사귀고 싶다는 응답이 높게 나온 것은 전통적인 부부관에 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모임에 애인을 데리고 나오는 친구들도 종종 있다"면서 "주변을 보면 기혼 남녀의 외도는 어떤 면에선 권태로움이나 외로움을 도피할 수 있는 탈출구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여성들의 반란

최근엔 유난히 '바람피우는' 여성들이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영화 '바람난 가족'의 병한(윤여정)은 남편과 사별 직후 초등학교 동창생과 만나 섹스를 즐기면서 '인생 솔직하게 살아야 되는 거더라'고 조언한다.

병한의 며느리 호정(문소리)은 옆집 고교생(봉태규)의 유혹을 받고 고교생과 장난같은 관계에 빠져든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앞집 여자'에선 평범한 가정주부(유호정)이건 맞벌이 여성(변정수)이건 각각 남자친구와 애인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바람피우는' 여성들이 이전과 달라진 점은 한층 당당해졌다는 것. 2002년 개봉한 영화 '밀애'의 여주인공 미흔(김윤진)의 외도는 인생을 모두 걸어야 할 만큼 무거운 것으로 묘사됐지만 최근엔 가벼운 '선택'의 하나로 그려지고 있다.

한 여성은 "결혼 전 연애감정을 느낀 적이 없는 여성들이 채팅에 빠지면 외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 같다"면서 "여성들의 외도는 남자의 그것과 달리 육체적인 관계보다 낭만적인 연애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바람'에 대해 한층 당당해진 이유에 대해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이영석 연구원은 여성의 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꼽았다.

"최근엔 여성들이 독립적 경제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자신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여성들의 외도가 이같이 부각된 것에 대해서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일선 연구원은 "남성들의 외도가 당연시됐던 것에 비해 여성들의 일탈은 신기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대중매체 등을 통해서 유난히 부각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 흔들리는 가족주의

영화 '바람난 가족'은 가족이란 울타리의 허술함과 구성원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47.7%로 집계돼 이혼율 50% 시대가 코앞에 다가온 것도 영화 '바람난 가족'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공동체로서 가족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박정희 책임연구원은 부부간 외도의 이유로 자극적인 사회환경과 기능적이지 못한 부부관계를 꼽고 있다.

인터넷.휴대전화 등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결혼에 대한 기대와 실제 결혼생활에서 오는 좌절감, 권태로움 등으로 인해 외도로 향하기 쉽다는 것.

하지만 배우자의 외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가볍지 만은 않을 뿐더러 부부관계의 신뢰성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된다.

이는 의처증, 의부증 등의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음과마음 정신과 김성미 원장은 최근 몇 년간 의처증 및 의부증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년 전만 해도 의처증이 훨씬 많았지만 최근엔 의부증이 증가하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이는 인터넷 채팅.메신저 등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고 특히 남성들을 위한 전화방.음란광고 등이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이 가족주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아직 섣부른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대구대 사회학과 박호강 교수는 "기혼남녀의 외도가 부각되는 것은 자유주의.개인주의 사상이 일반화되면서 기존의 전통주의.가족주의와 맞대결을 일으키는 사회 변화의 한 현상"이라면서 "하지만 기존 가족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아직은 훨씬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가족주의 붕괴로 직결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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