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脫北 남녀 컴맹서 컴퓨터 강사 변신

"살아서 남한 땅을 밟는 것만해도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한 사람들을 상대로 컴퓨터 강의를 하게 될 줄이야… 정말 꿈같은 일입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도봉구 장애인연합회'에서 매주 화,목요일 장애인은 물론, 노인, 주부 등을 상대로 윈도 98과 한글, 인터넷 등 컴퓨터 기초를 가르치는 탈북자출신 김희수(32.가명)씨.

지난 99년 탈북, 재작년말 입국한 김씨는 북한 대학에서의 건축공학 전공을 살려 지난해 3월 어렵사리 취직을 했지만 '컴맹'을 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해 3일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북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는데 남한 사람들이 컴퓨터를 모르는 저를 보고 외계인 취급을 하더군요".

회사를 그만둔 후 한동안 컴퓨터만 보면 슬슬 피해다녔다는 김씨는 "남한 생활에 적응하려면 컴퓨터를 모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4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실시하는 4개월간의 컴퓨터 무료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됐다.

그는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자격증을 가졌지만 한양대 건축공학과에 편입하기 위해 요즘 학원에서 '컴퓨터 지원 설계'(CAD), 포토샵 등을 배우느라 바쁘다.

여성 탈북자 한문희(42.가명)씨도 김씨와 마찬가지로 컴맹에서 당당히 컴퓨터 강사로 변신한 케이스.

지난해 말까지 구로구 장애인 정보화협회 등에서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컴퓨터강의를 했던 한씨는 올 4월 부터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탈북자들을 가르친다.

지난 2001년 10월 남편과 아이 둘과 함께 입국한 한씨는 그간 꾸준히 컴퓨터를 공부한 덕에 워드 프로세스 1급, 정보검색사 2급,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전산회계운용사 등 컴퓨터 관련 자격증만 4개나 갖춘 베테랑.

이미 40여명의 컴퓨터 과정 졸업생을 배출한 한씨는 낮에는 보험 설계사로 뛰고 밤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억척 여성이기도 하다.

"남한 사람들은 모두 컴퓨터를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남한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면서 우리 탈북자들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수강생들에게 솔직히 밝히면서 더 가까워졌다는 한씨는 "큰 욕심은 없어요. 단지 부모로서 아이들의 장래에 밑받침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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