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넘치는 식량과 굶주림

'세계 굶주림 지도'를 보면 지구의 3분의1 이상이 굶주리는 지역으로 검붉게 표시되어 있다. 북한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간다는 소식을 날마다 접했던 시절, 끼니마다 이래 먹어도 되는가 하며 죄책감을 느꼈다. 유년기의 배고픔을 기억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식량의 절대량이 모자라니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지구 사막화를 막기 위하여 하루빨리 지구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전지구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들에게 원조를 해주는 효과가 가장 빠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 시대의 상식을 바탕으로 한 것일 텐데, '굶주리는 세계'(프랜씨스 라페 외, 창비)는 식량 문제와 관련된 대부분의 상식이 완전히 틀리거나 적어도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식량에 관한 12가지 신화에 빠져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굶주림의 근본 원인은 식량과 경작지의 부족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족이다. 돈이 없으면 무엇도 구할 수 없는 시장 체제, 농지를 독점하는 부자, 서구인의 소비를 중심으로 세계의 농작물 품종을 변경하도록 유도하는 서구 자본과 독재 정권, 이런 요인들이 굶주림을 조장한다고 이 책은 고발한다.

그러고 보니 굶주림을 못이긴 농민들이 쇠스랑과 호미를 들고 부잣집 곳간을 습격하는 우리 옛 이야기가 떠오른다.

세상은 먹을 것으로 넘쳐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의 고통을 면치 못하는 것은 사람이 사악하기 때문이라고 외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우리의 삶이 타인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파악하는 직관력과 선량한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도덕적 감수성 등에서 나온다.

제시된 자료들은 이 책과는 상반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기는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은 농산물 완전 개방을 앞둔 우리들이 식량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근본적으로 반성하게 한다. 굶주림이란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저주가 아니라 사람이 조장한 사회 현상이란 것을 보여주기에 이 책은 절망보다는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하겠다.

이강옥 영남대 교수.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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