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군 파병 예정지를 기존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에서 중남부 지역으로
옮기기로 미군과 합의한 것은 갈수록 악화되는 현지 치안상태와 국내 정치상황이 복
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작년 말부터 키르쿠크 파병을 염두에 두고 자이툰부대를 창설하는 등 파
병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하다 주둔지와 임무 등의 문제를 놓고 미군과 균열현상을 드
러낸 것은 이달 초순이다.
황의돈(육군소장) 자이툰부대장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군 협조단이 지난달 24일
부터 이달 3일까지 키르쿠크를 방문했을 당시 미군측에서 한국군과 공동 주둔 및 작
전을 요청했다 거부당한 것이다.
미군은 당시 수니삼각지대에 대한 공세 강화로 저항세력들이 몰리고 있는 키르
쿠크내 하위자와 인근 헴린 산맥에 기존의 미25사단 2여단 병력을 한국군 파병 이후
에도 잔류시키겠다고 제의했다.
또 키르쿠크 공항경비를 위해 미군 1개대대 병력을 배치하고 저항세력 등의 공
격을 받을 경우 한국군과 공동작전을 펼칠 것을 요구했다.
한국측은 미군이 키르쿠크에 주둔할 경우 국회승인을 받은 파병동의안에 명시된
대로 이라크 일정지역에 대한 한국군의 독자적인 지휘체계 유지가 힘든다며 미국측
제의를 수용하지 않았고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합참은 리카도 산체스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중장)과 서면접촉을 통해
파병지 및 공동작전 여부를 놓고 이견을 조율하다 직접 만나서 이 문제를 풀자는 제
의를 받았고 15일 김장수 합참 작전본부장이 급거 이라크로 파견됐다.
김 본부장은 현지에서 하위자와 키르쿠크 공항의 미군 주둔 제의를 수용하되 공
동작전은 펼칠 수 없다는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합의점 도출에 실패해 결국 주둔지역
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본부장은 협상 과정에서 자이툰부대는 기본적으로 평화재건을 주임무로 하기
때문에 게릴라 소탕이나 공동 정찰 등 치안유지 작전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
했고 미군은 "치안유지 작전을 펴지 않고 어떻게 평화재건 활동을 하겠느냐"며 제3
의 지역 파병안을 제시해 우리가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키르쿠크보다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이라크 중남부지역으로 맡아달라는 미
국측 제의를 우리가 선뜻 수용한 것은 지난 11일 스페인 열차폭탄 테러(사망 200명,
부상 약 1천500명)사건을 계기로 국내 테러위협이 커진 상황을 중시한 데 따른 것으
로 분석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가결 이후 국내 정국불안이 가중되고 다음달 15일
총선을 앞두고 파병문제가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정부측의 판단도 주둔지역을
옮기게 된 배경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할 예정인 한국에 대해 테러세력이 파병
저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고속철도나 항공기 등을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한다면 총선
정국에 최대 돌발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키르쿠크 파병일정을 잡을 때도 총선을 염두에 뒀다. 선발대
1진 병력을 다음달 7일 출국시키되 쿠웨이트에 체류시켰다 이라크로 들어가는 날짜
를 16일로 잡은 것은 총선일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번에 주둔지를 변경한 것도 같
은 맥락일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한국측이 자이툰부대의 유력한 파병지역으로 검토하고 있는 곳은 이라크 중남부
나자프 지역이다.
이 지역은 현재 주둔중인 스페인군이 6월 말까지 본국으로 철군할 예정인데다
키르쿠크에 비해 면적이 크게 좁고 치안상황이 안전한 데다 서희.제마부대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병지 변경으로 한국군의 파병일정도 6월 말 이후로 늦춰지는 게 불가피해졌다.
지역정보 수집과 현지시찰, 장병 교육 등에 적어도 1개월 이상 소요되고 스페인군과
주둔지 인수인계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그동안 키르쿠크 치안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언론 등의 지적을 적
극 수용하지 않은 채 주둔지로 결정, 현지 지도자들을 대거 국내로 초청하고 경제지
원을 약속했다가 돌연 파병지를 바꿈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적지 않은 신뢰도 상실도
우려된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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