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대구의 정체성

1995년부터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각광받는 용어는 단연 '정체성'(Identity)일게다.

지역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비전이야말로 주민의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 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구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송광사 방장스님 법문이 생각난다.

"대구는 분지라서 연중 기온 차가 가장 심한 곳이다.

그런 만큼 대구사람은 역경을 이겨나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인욕의 터널이 길면 길수록 역경을 극복해 가는 지혜가 배가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소임을 마다하지 않고 국운을 개척해 왔다.

역사의 질곡을 헤쳐오면서 조국과 민족을 구원한 향토의 선각자들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신라의 원효대사는 삼국 통일을 전후한 격동기에 태어나 하층민, 정복지역 유민 등 소외된 대중들을 뜨겁게 보듬은 민중의 벗이 되었다.

특히 화쟁사상(和爭思想)을 일으켜 종파간 화해를 도모하고, 종래 귀족불교 중심에서 벗어나 대중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사자후를 토하며 민중불교의 길을 열었다.

고려후기의 일연선사는 무신정권과 몽골 침략기를 겪으면서 국력의 쇠약함을 한탄하며, 호국사상과 자주적 민족사관이 바로 서지 못한데서 그 원인을 찾고 평생을 삼국유사 집필에 몰두했다.

유의 거봉(巨峰) 퇴계선생은 성리학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몸소 사표(師表)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퇴계학맥(일명 영남학맥)은 한국 정통학맥의 한 축으로써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구한말 최제우 선생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고 하면서 동학(東學)을 창시하여 민중의 등불이 되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민족문화를 실질적으로 창도(唱導)해 왔으며, 대구는 가야문화와 신라문화의 융합된 한국문화의 원류이자 불교와 유교문화의 정수(精髓)가 살아 숨쉬는 고장이기도 하다.

특히 1601년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방면에 걸쳐 명실상부 영남의 맹주 역할을 자임해 왔다.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대구가 오늘날 '학문과 문화의 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런 발상이다.

250만 대구시민의 생존 전략도 지식.문화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대구의 정체성과도 부합되니까. 남석모(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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