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 규모의 IT(정보기술) 클러스터를 지향하던 '대구-구미'간 IT라인이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구미전자산업단지 200억 달러 수출 달성의 주역 중 하나였던 디스플레이 분야가 급속히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성장축인 모바일의 경우 국내 산업은 구미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확고한 기반을 굳혔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바일 역시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 때, IT산업라인을 생명줄로 삼고 있는 대구와 경북 주민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구권 미래 경제에 대한 지방정부와 학계, 산업계, 전문가, 정치권의 우려와 위기감은 시나브로 절정에 이르고 있다.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위기의 현주소와 해법을 모색해 본다.
◇평판디스플레이 산업 배치의 재편=지난 3월19일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서는 LG필립스LCD 클러스터 착공식이 열렸다.
향후 10년간 25조원을 투입, 100만평(LG필립스LCD 51만평, 협력업체 50만평)이 넘는 대규모 단지가 조성된다.
2006년 초부터 양산을 시작해 2010년쯤에는 연 매출 15조~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구미에 있는 5, 6세대 LCD 생산라인이 여전히 가동될 것이지만, LG필립스의 디스플레이 산업 주도권은 완전히 경기도 파주(7, 8세대 대형LCD 생산라인 중심)로 넘어가는 셈이다.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삼성은 새 근거지로 충남 아산시 탕정면을 이미 선택했다.
삼성은 탕정면 61만평 부지에 건설중인 4개의 LCD라인 이외에 인근 99만평에 또다시 LCD 라인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2010년까지 20조원을 쏟아부어 연 매출 2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당장 삼성이 내년 초부터 아산 탕정에서 LCD 양산에 들어가면, 구미공단의 위상은 위축되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창 성장기에 접어든 LCD 클러스터의 중심지라는 위상을 지키기에 대구와 경북은 너무 늦었습니다.
우리 지역이 현실에 안주하고, 닫힌 보수성으로 배타적 행태를 보이고 있을 때, 경쟁지역은 사활을 걸고 전력을 기울여 노력했었고, 이제 그 결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반성이다.
◇새로운 희망 '유기EL'=그렇다면 대구와 구미간 IT라인의 산업기반과 인력양성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향후 대구경북을 먹여살릴 수 있는 주력산업이 될 만큼 규모가 크고, 아직 중심거점이 마련되지 않은 산업분야는 무엇일까. "LCD에 이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유기EL입니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대구와 경북이 유기EL 클러스터의 중심이 된다면, 앞으로 40~50년은 끄덕없이 경제적 활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지방정부, 학계, 산업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해답'이다.
이제 막 산업화 초창기에 진입한 유기EL은 삼성SDI(경남 양산)와 일본 파이오니어사가 모바일용 소형분야에서 세계 톱 경쟁을 벌이고 있고, LG전자(구미)가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
장차 기술의 발전에 따라 대형 유기EL 패널 생산이 본격화 될 때, LCD 시장의 상당부분이 유기EL로 대체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시말해 유기EL 분야에 대한 전세계적 R&D(연구개발) 수요가 엄청날 뿐아니라, 대규모 시설투자와 인력양성이 뒤따르게 되고, 더욱 중요한 것은 '고부가가치 제품이면서 한국이 세계 최고가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는 점이다.
지난달 31일 평판디스플레이(=LCD, PDP, 유기EL 등 포함)용 기판 유리 전문 벤처기업 (주)신안에스엔피가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오던 유기EL용 투명전도성박막을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해 양산체제를 갖추고, 세계적인 평판디스플레이 업체인 일본 아시히글라스도 대구나 구미에 R&D를 겸한 생산공장을 짓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구미간 IT라인이 세계적 유기EL 클러스터 후보지로 손색이 없다는 방증인 셈이다.
또 중국기업과 274억원 규모의 기술수출계약을 맺고, 미국 캐피탈 펀드 그룹과 3천만 달러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한 수도권 유망 벤처기업이 차세대 유기EL 대구생산공장을 짓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삼성상용차 부지 입주협상을 벌이다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외국계 기업 역시 모바일용 소형 LCD 디스플레이에서 향후 유기EL로 옮겨갈 구상을 하고 있다.
◇과제와 성공전략="유기EL 클러스터 조성과 관련, 대구권은 고급인력과 생산인력이 우수하고 생활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어 어느 곳 보다 유리합니다.
문제는 관료들과 시민들의 의식이 보수적이고 닫혀 있어 대기업들이 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대구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민의식과 관료의식의 획기적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기EL 클러스터 조성의 성패는 새로운 첨단 생산공장을 지어야 하는 삼성SDI의 지역유치 성공과 현재 구미에 기반을 두고 있는 LG전자의 유기EL 분야 역시 지역에 그대로 붙잡아 두는 것. 마켓진입 초기 단계인 유기EL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을 유치하게 되면, 자연히 이에 관련된 세계 각국의 R&D 센터와 부품공급업체들이 모여들어 클러스트를 형성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인력양성 기초기반은 경북대와 영남대, 포항공대 등 지역 대학들로서도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제도만 갖추면 문제가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신원 경북대 교수(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정교육센터 소장)는 "반도체 생산이 150여 개 공정이 필요한 반편, 유기EL과 LCD 등 디스플레이의 경우 250여 개 공정이 필요하다"며 디스플레이 분야의 산업 파급효과를 설명했다.
"지금 당장의 여건을 가지고 대기업을 유치하려 한다면, 수도권에 비해 대구권이 열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의 경우 최소한 10년 이상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10년 후의 대구권 발전전략을 기업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맞추어 계획하고 착실히 추진하면서 유치운동을 펼친다면 승산은 분명히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지방정부'와 '대학' '경제계' '정치권'이 하나로 똘똘뭉쳐 노력한다면 '대구권 유기EL 클러스터'의 꿈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유기EL이란?
전기에 의해 발광되는 '루미네선스'를 약칭하여 EL이라고 한다.
열 이외의 에너지에 의해 빛이 복사되어 발광되는 현상을 '루미네선스'라 하는데, EL은 특히 전기장을 가하는 방법으로 일으키는 '루미네선스'이므로 '전기장루미네선스'라고도 한다.
LCD에 이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고 있는 유기EL은 발광층이 얇고, 전극 스트라이프의 정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표시 품질이 뛰어나며, 주변 회로의 집적화에 의해 소형 경량화가 용이하다.
또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보다 값이 싸고 전력 소비가 적은데다 수명이 길기 때문에 차세대 평판디스플레이로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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