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우체국 신문

문자는 권력을 장식하고 백성을 지배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출발했다.

왕조사회의 관료는 문자를 농락하여 체제의 도리를 분식하는 집단에 다름 아니었다.

계급독재사회인 조선에서도 문자는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전체 인구의 10%에도 못 미치는 양반들이 문자를 독점함으로써 40%대의 일반 백성과 50%대의 노비들을 지배할 수 있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자를 아는 일부 귀족과 지식계급이 대다수 인민들을 통제했다.

▲1450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은 근세를 여는 혁명이었다.

성경 등 제한된 서적의 인쇄에 그쳤지만 문자 독점을 파괴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문자 보급으로 일반 국민들이 권리의식에 눈을 떴고 여기에 불안감을 느낀 귀족과 지식계급은 인쇄내용에 철저한 통제를 가하고, 정부를 비방하면 가혹한 탄압책을 구사했다.

▲문자와 권력의 관계는 신세계 미국으로도 이어졌다.

미국에서 처음 신문이 발간된 것은 1690년이다.

초기 신문들은 주로 신문 발행 독점권을 가진 우체국장들에 의해 발간됐다.

신문과 같이 위험한 물건은 권력자에 충성할 수 있는 우체국장의 손에 맡겨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잔재가 미국을 포함한 서구 신문에 아직도 남아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포스트'는 우체국이라는 의미다.

신문 제호에 과거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신문이 발간된 것은 미국보다 193년 늦은 1883년이다.

당시 언론인은 방사인(訪事人) 탐방인(探訪人)으로 불린 주사 등의 하급관리였다.

1896년 4월 7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발간되면서 언론인 명칭은 탐보원(探報員), 기재원(記載員)으로 바뀌었다.

탐보원은 외근기자, 기재원은 부장 또는 논설위원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기자라는 말이 처음 쓰여진 것은 1898년의 일이다.

제국신문 논설에서 '기자 이승만'이라는 표기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오늘은 독립신문 창간 108주년, 곧 신문의 날 108돌이다.

여느 때와 다른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80년대 중반 이후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신문의 처지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에게는 권력의 크기에 따른 비판이라는 책무가 주어진다.

큰 권력에게는 큰 비판을, 작은 권력에게는 작은 비판을 해야 한다.

야당에 대한 비판도 있어야겠지만 실제 집행권력을 가진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더 큰 의미다.

그러나 우리 신문들은 어느 덧 권력의 감시자와 대변자로 양분돼버렸다.

한국 신문역사의 또 하나 야릇한 기록이 될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정신을 잃은 것인지, 신문이 정신을 잃은 것인지, 참으로 혼란스런 신문의 날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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