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리피리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5월. 아롱다롱 꽃대궐로 요란하던 산천이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색을 바꾸고 있다.

이맘때면 자연의 생명력은 충만하다 못해 절정에 달한다.

사람들은 싱그러운 5월의 대지에서 '희망'을 엿본다.

바람결에 제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일렁이는 연초록 보리 이삭들이 이미 들판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자연을 놀이터 삼아 마음껏 뛰어놀며 재잘대는 아이들의 맑고 밝은 얼굴에서도 벌써 5월이 느껴진다.

곡우(穀雨)를 막 넘긴 청보리밭. 단비가 내려 백곡(百穀)이 윤택해진다는 곡우는 아마도 보리에게 바치는 봄의 마지막 선물이다.

빗방울이 스친 청초한 보리 줄기마다 한껏 봄 기운이 오르고 대지는 이제 새로운 시절을 준비한다.

호미곶 등대가 훤히 보이는 포항 대보면. 20만평에 이르는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그네의 눈은 마냥 푸르기만 하다.

맑디맑은 하늘을 이고 수평선까지 뻗어 바다에 안긴 또 하나의 초록빛 바다다.

무릎을 덮을 만큼 자란 보리 속을 헤쳐다니며 온 몸으로 풋내를 맡는다.

목가적 풍경뿐이랴. 강인한 생명의 소리가 우리 가슴을 벅차게 한다.

보리목이 나오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초록빛의 절정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이삭은 서서히 누런빛을 띠기 시작해 황금 보리로 변해버린다.

지난 시절, 5월이면 까까머리 아이들이 보리잎으로 풀피리를 만들어 불고 종달새를 쫓아 들녘을 쏘다녔다.

이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도 보리가 핀 들녘에 서면 유년의 추억이 생생하다.

강한 해풍탓에 벼농사가 힘들었던 대보면 호미곶 보리밭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

"대보 처녀는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을 못 먹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무척 힘겨웠던 시절이 있었다.

춘궁기때면 대보 처녀들은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치며 보리밭두렁의 쑥으로 허기를 달래야만 했다.

보릿고개와 정부의 보리장려정책. 보리에 대한 중장년세대의 진절머리나는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보리가 이젠 성인병 예방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대접받고 있다니 보리의 억척스런 생명력은 놀랍기만 하다.

'보리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꽃 청산/어릴 때 그리워/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방랑의 기산하(幾山河)/눈물의 언덕을/피―ㄹ 닐니리'

시인의 노래에서 응어리진 고향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글.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 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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