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가정의 달' 5월이 열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바로 가족이지만 대부분은 그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간다.
특히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자신을 버리지만 자식들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된다.
오죽하면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는 말이 있을까. 또한 대부분 자식들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존재로만 인식할뿐 한 세대 앞서서 이 세상을 살아간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엽서로 그린 그 진한 사랑'은 아버지, 어머니란 존재 속에 숨겨진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냈기에 우리에게 더욱 진한 감동을 준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 어머니'란 부제처럼 조정래 이이화 이현세 박정자씨 등 12명의 문인과 학자, 예술가들이 자신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그리움으로 담아냈다.
책의 제목인 '엽서로 그린 그 진한 사랑'은 화가 이중섭의 아들인 태성씨가 아버지를 추억하는 글에서 따왔다.
이중섭은 부인과 자식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일주일에 몇 번씩 엽서를 띄워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했다.
"내 사랑하는, 날마다 보고싶은 태성이 잘 있었나? 아빠가 있는 서울은 서늘해서 그림 그리기에 아주 좋단다.
모두하고 사이좋게 그리고 튼튼하고 용감하게 하고싶은 것을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 아빠는 태현이와 태성이가 게와 물고기와 놀고 있는 그림을 그렸단다.
아빠 중섭". 태성씨는 글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뜬 것은 내가 일곱 살 때였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보낸 엽서를 통하여 그 존재를 확인하고는 했다"고 털어놨다.
소설가 조정래씨의 아버지는 열 여섯에 순천 선암사로 출가해 스물 넷의 나이에 법사가 된 철운스님. 그는 일제의 종교황국화정책에 따라 28세에 대법당에서 혼례를 올린 선암사 최초의 승려였다.
조씨는 여순반란사건에 휘말려 모진 고초를 겪었던 아버지를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법일스님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
그는 아들을 출가시키려던 아버지와, 이에 완강히 저항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제 솔직히 말하건대, 남자로 태어나 사랑 한번 못해보고 일생을 마쳐야 한다는 사실의 억울함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아, 그때의 세상 물정 몰랐던 순진무구했음이여. 지금처럼 환히 알 수 있었다면 어찌 그 길을 마다했을까".
만화가 이현세씨는 큰아버지가 딸 둘만 남기고 세상을 떠나 큰집에서 양자로 자랐다.
스무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방학을 맞아 들른 고향에서,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 직장인 철도수리공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작은아버지'가 사실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아픈 마음으로 회상한다.
"나는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가족을 위해 웃음을 던질 수 있었던 당신을 생각했고 그런 아버지를 그리고 싶어했으며 아들과 같이 흙구덩이 속에서 전쟁놀이를 할 수 있는 아버지를 그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나는 내가 그런 아버지를 끝내 그릴 수 없었던 이유와 당신이 여전히 내게 멀리 있기만 했던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조건없이 사랑을 준 당신을 그리려면 나도 당신을 조건없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연극인 박정자씨는 감수성과 서정, 집요함, 동물적인 후각, 때로 사람들을 구석으로 모는 듯한 강한 목소리, 삼십 년이 넘도록 독한 분장을 해도 트러블 한번 일으키지 않는 도화지 같은 피부, 기쁠 때 기뻐할 줄 알고 슬플 때 슬퍼할 줄 아는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감수성까지 물려준 어머니를 추억하고 있다.
책에는 이밖에 '전포동 만화방의 의로운 투사'(박재동) '키작은 여성해방주의자'(오한숙희) '술과 마작보다 더 좋아한 것'(신경림) '오줌누는 꿈에서 깨어보면'(이이화) '머금은 눈물과 억누른 혈기'(윤구병) '나란히 묻어드린 또 하나의 관'(정양완) '사나이 대장부 눈물'(김영현) '그 사나이의 눈물'(정진홍) 등의 글이 실렸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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