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란 말이 피부색과 국경을 떠나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습니다".
정부의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 강제추방이 시작된 지 어느새 근 6개월이나 됐다.
하지만 대구 곳곳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몸과 마음은 춥고 떨리기만 하다.
대구 남구 대명3동 외국인 노동상담소에 마련된 숙소에서 5개월째 바깥 출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스리랑카 출신 아셈(40)씨. 그는 요즘 그동안 통증이 심했던 치아가 최근들어 더욱 아파 밤에 잠을 이루기도 힘들 정도이다.
외국인노동상담소에 따르면 이들 외국인근로자는 건강보험 혜택이 전무한데다 갖고 있던 돈마저 이제는 다 떨어져 가고 있어 몸이 아파도 진통제만으로 버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대구청년회의소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경북지부(이하 건치 대.경지부)'가 상담소와 함께 대구에서 처음으로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무료 치과진료소'를 만든 것.
△어떻게 이뤄졌나
무료 치과진료소를 여는 데는 "대구 사회의 미래 근간이 될 20~40대 청장년층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외국인 상담소 김경태(45) 목사는 전했다.
특히 지난해 말 매일신문이 보도한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들의 힘겨운 겨울나기(본지 2003년 12월29일 보도)를 알게된 대구청년회의소가 재정 지원을 비롯해 진료소 꾸미기 등을 떠맡겠다고 나서 이뤄지게 됐다고 했다.
최성욱(崔成旭.35) 대구청년회의소 회장은 "기사를 읽고 난 뒤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계층을 위해 할 일이 없을까 하고 고심하던 회원들의 뜻이 모아졌다"면서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몇 차례 들르면서 '정말 빨리 이 일을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뜻을 '건치 대.경지부'에 전하자 역시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흔쾌히 밝혀와 치과진료소 개설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것. 진료소 개설을 위한 특별사업담당이사로 있는 은종갑(39)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실무자 회의를 여러차례 거치면서 청사진이 하나하나 마련됐다"며 "그러던 참에 치과의사 활동을 그만둔 권선희씨가 진료장비와 기구를 기증해 준비하던 손길에 힘을 싣고 큰 감동도 주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지원에 앞서 진료소 준비팀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외국인근로자들이 건강을 되찾아 대구사회에서 온기를 잃지 않고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대구청년회의소 최 회장은 "나 자신 치과의사로 일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혜택이 그리 많지 않은 치과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더군다나 외국인근로자들은 외부활동도 여의치 않기 때문에 병을 안고 사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어떻게 운영되나
이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한뜸한뜸 꿰어지고 있는 무료 치과진료소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고민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장소에 있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에 대구 중구 남산4동 구민교회 내 2층 한쪽에 마련됐다.
지난 29일 오후 8시 구민교회 내 무료 치과진료소. 예배실을 지나 한쪽 방문을 여니 밝은 조명 아래 진료.치료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본적인 시술은 물론이고 X-RAY, 구강흡입기 등 웬만한 진료장비도 다 갖춰 외국인 근로자가 마음 편하게 구강 치료를 받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의 환경이 구비되어 있었다.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김동현(41) 목사는 "치과 진료는 많은 기계장비와 고가의 재료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당초 진료소 개설준비를 할 때 '과연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을까'라며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잘 꾸며져 마음이 흡족하다"고 말했다.
또 김 목사의 아내인 손해옥(39)씨도 치과의사로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건강을 제대로 챙길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날 진료소를 찾은 '건치 대.경지부' 박준철(35) 사무총장도 흐뭇한 미소를 짓기는 마찬가지. 박 사무총장은 "우리 단체는 특별한 봉사단체가 아니고, 이 사회가 건강하게 흘러 갈 수 있도록 한데 힘을 뭉쳐보자는 의료인들이 모인 시민참여단체"라며, "하지만 인술(仁術)을 베풀어야 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외국인근로자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박 사무총장은 또 "회원들이 대부분 대학시절부터 도시빈민.장애인 진료 등 소외계층 의료진료를 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의료시스템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번 치과진료소 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건강한 육체에서 사랑도 피겠죠
무료 치과진료소는 2일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인술 베풀기에 나선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간 동안 진료하며, 조금 난이도가 높은 시술은 자원봉사에 나서는 치과의사들이 자신들의 병원에서 하거나 회원들의 병.의원에 소개를 할 계획이다.
진료소 준비요원들은 "외국인근로자들 가운데는 아직도 '한국사람, 너무 싫어요'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며, "하지만 이들에게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서서 따스한 말 몇마디만 건네면 경계심이 사라지고 우정도 오갈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하는 무료 치과진료소이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고 한다.
기증받은 진료장비를 이용해 기본적인 치료는 가능하지만 보철 등 고가재료가 들어가는 시술은 원래 취지처럼 무조건 무료로만 운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에 대해 외국인상담소측은 "외부의 지원 요청과 재원 마련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생각"이라면서, 현재 기독약사회에서 약품 제공을 약속하는 등 희망의 연결끈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외국인노동상담소 김경태 목사는 "힘든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어디에선가 도움을 주는 것을 보면서 이 사회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며 "많은 이들의 도움을 통해 출발하는 만큼 잘 꾸려져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무료 치과진료소 운영요원들은 "경제적인 사정과 열악한 근로조건때문에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외국인근로자들이 이곳에서 건강을 찾고 웃음도 다시 찾도록 해 주고 싶다"고 했다.
이날 자원봉사에 나선 한 치과의사는 "조명을 밝게 설치했는데 외국인 근로자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을지 모를 어두움까지 밝혀주고 싶네요"라며 말을 맺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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