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지금처럼 음식 재료와 조리법이 다양하지는 못했을텐데 그저 밥, 국, 찬 종류가 고작이지 않았을까…. 지난달 29일 기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안동으로 내달렸다.
이제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옛 음식을 재현해 만들어 본다니,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안동에서 하는 것일까.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질문거리들이 머리를 꽉 채웠다.
안동시 송천동에 자리한 안동시농업기술센터. 우리음식연구회 회원들이 앞치마를 두른 채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선비의 고장 안동은 선비의 격에 맞게 안동 특유의 음식이 뿌리깊게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긴 훌륭한 식문화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앞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옥화(83) 우리음식연구회장(경북무형문화재 12호 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의 설명에 한 가지 궁금증은 풀렸다.
안동이 우리 음식문화의 본산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전국의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던 TV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많은 음식들이 사실 안동 양반음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음식이 맛깔스러운 고장으로 전라도 지역을 먼저 손꼽는다.
하지만 경상도 음식은 맵고 짜고 맛이 없다고 불평하기 일쑤다.
그런데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만들었던 '대장금'의 음식들이 경상도지역인 안동의 음식을 바탕으로 했다니….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조리에 관한 전문적인 문헌은 고려시대까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한글로 쓰여진 최초의 요리책인 '음식디미방(閨곤是議方, 조선 숙종 1670년경)'이라는 고서가 있는데 '대장금'은 이 내용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고 합니다".
개고기 조리법, 육류의 훈연 저장법 등 93가지 음식 만드는 법과 51가지 술 만드는 법을 다룬 이 고서는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가 중국문헌과는 관계없이 예부터 내려오거나 스스로 개발한 조리법들을 적어서 후손에게 전해주려고 쓴 것으로 안동 양반음식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100여년 앞서,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수운잡방(需雲雜方, 조선 중종 1540년경)'도 안동에서 만들어졌다니 안동의 음식문화를 소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안동군 와룡면 오천동의 광산 김씨 예안파인 김유(金유, 1481∼1552)가 한문으로 쓴 조리서인 '수운잡방'은 지난 1987년 윤숙경(70) 전 안동대 교수가 발견한 것으로 고려 말기에서 조선 전기의 음식법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김치를 맵지 않고 시원하게 담그려고 고춧가루를 안 넣고 새우젓을 넣어 담그기도 합니다.
'수은잡방'에 실린 '조섞박지' 김치 담그는 방법을 보니 무에 칼집을 넣어 생나물.실파 등 고명과 젓갈을 켜켜이 넣고 삭혀 고춧가루를 넣은 김치보다 맛이 더 깔끔하고 시원하더군요".
신복순(64)씨는 고춧가루가 없었던 옛날에 양념을 버무려 넣지 않고 한켜 한켜 넣을 생각을 했던 것이 새롭게 여겨진다며 '수은잡방'에는 젓갈 중 굴젓이 가장 좋고 다음으로 새우젓이 좋다고 적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옛날의 조리법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이 많았다.
냉장고가 없어도, 방부제나 빵을 부풀리는 이스트와 같은 재료가 없지만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음식들을 척척 만들어 낼 정도로 조리법이 과학적이었다.
'수은잡방'에 소개된 '과저'는 소금 절임으로 지금의 오이지 담는 방법과 비슷하다.
7, 8월에 가지나 오이를 따서 소금 3되, 물 3동이를 1동이가 되도록 달여 식혀 오이가 잠길 정도로 붓고 돌로 눌러두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오이와 오이 사이에 할미꽃 잎과 줄기를 켜켜이 넣으라는 말이 있다.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 구더기가 생기지 않도록 할미꽃을 넣어두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과저에 할미꽃이 쓰인 것은 방부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우리음식연구회를 도와 학술적으로 전문적인 도움을 준 윤숙경.김소자(안동 가톨릭상지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와 함께 자료 정리.기획 일을 맡은 김기희(44) 경동정보대 식음료조리과 교수는 경북 북부 내륙지역인 안동에서 민물고기로 어식해를 만들 생각을 한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밥 반찬이나 술 안주로 쓰인 어식해는 생선과 양념, 소금간이 빠져 음료수 종류인 지금의 안동식혜로 변했다고 한다.
이번에 안동에서 처음으로 재현된 '수은잡방' 음식이나 '음식디미방'의 조리법들은 원조 웰빙(Well-Being) 음식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 영계 등 기름기있는 음식들은 지금처럼 기름에 튀기지 않고 중탕을 하여 쪄 기름기를 제거했다.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켜 지금의 찐빵과 같은 음식도 만들어 먹었고, 암탉과 대구로 족편과 같은 음식도 만들어 먹었다니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조리법이 상상력을 뛰어 넘는다.
조 회장은 "옛 음식들과 조리법들에 대한 자료를 구체화해 음식 15가지, 술 3가지 등 조선시대 안동 전통음식을 오는 26~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계음식박람회에 선보일 예정"이라며 "우리 몸에 이로운 향토 전통음식에 관심을 보이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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