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법 대선자금' 수사 '절반의 성공작'

'정치개혁 견인차'...'뒷심부족'엔 아쉬움

한국판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로 불리며 작

년 8월부터 숨가쁘게 진행돼 왔던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21일 수사결과를 발표하

고 9개월만에 사실상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검찰은 국민의 유례없는 성원속에서 진행된 이번 수사를 통해 검은돈을 주고 특

혜를 얻는다는 정경유착으로 상징되는 정치권과 재계의 유착 고리를 끊고 정치권의

개혁을 이끌어내는 혁혁한 전과를 남겼다.

검찰은 특히 '노캠프'의 불법자금을 파헤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

던 중 탄핵심판이라는 벼랑까지 내모는 단초를 제공했을 정도로 성역을 향해 가차없

이 칼을 겨누기도 했다. 이를 통해 검찰은 권력의 우산에서 벗어난 '자유 검찰'의

위상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러나 수사 막바지에서 검찰이 이른바 '출구조사'로 불리는 대선자금 사용처

수사를 유보한데 이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소환 문제 및 재벌총수 처리를 놓고

'뒷심' 부족 현상을 보여 공든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 정치개혁 도화선 제공 = 이번 대선자금 수사의 최대 성과로 무엇보다 그간

관행적으로 묵인돼온 정치권의 부패 관행을 단죄하면서 난공불락으로만 여겨졌던 정

치 개혁의 불씨를 지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작년 8월 SK 비자금 수사를 시작으로 10대 그룹으로 확대된 대선자금 수사는 이

른바 '차떼기'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면서 정경유착 근절을 목표로 정치권을 상대로

가차없이 메스를 들이댔다.

특히 검찰은 사실상 노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통해 노 캠프 주변의 불법자금

을 성역없이 파헤쳤다. 안희정.이광재.여택수.최도술씨 등 최측근들이 잇따라 구속

되거나 재판에 회부된 것은 물론 정대철.이상수 의원 등 현 정권의 창업공신들까지

도 예외없이 철퇴를 맞았다.

지난 대선 직전에 800억원이 넘는 불법자금을 모금한 실력을 보여줬던 한나라당

역시 부패당이라는 멍에를 끝내 벗지 못하고 이번 총선에서 제2당으로 전락하는 수

모를 겪기도 했다.

대선자금과는 직접 관련 없지만 검찰은 김종필.이인제 의원 등 유력 대선후보

출신 정치인 2명을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전격 사법처리했다. 또 과거 정권에서 총

리를 지냈던 이한동 전 총리 역시 조사 대상에 올랐다.

검찰은 막판에 '출구조사'와 관련, 한나라당의 당사 국가헌납과 빅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법치주의에서 후퇴했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으며 이회창 전 총재

의 소환문제를 놓고도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수사는 정치권의 정치관련법 개정을 유도, 고비용 정치구조를 초래한 주범

으로 꼽혔던 지구당 폐지 및 정치자금 투명화 등 정치권의 체질 개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도 기여했다.

수사 기술적 측면에서 국내의 어느 수사기관도 뒤따라오지 못할 자금 추적 노하

우를 구축함으로써 앞으로 부패 범죄에 대한 대응 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민변 김인회 사무차장은 "이번 대선자금 수사가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완전히

끊어놓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이를 단죄하고 이번 총선을 통해 깨끗한 정치풍토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 기업에는 '면죄부' 논란 = 불법자금 제공 이전에 비자금 조성이나 횡령 등

기업의 본질적 비리도 좌시하지 않겠다던 검찰이었지만 결국 불법자금 제공 혐의로

형사처벌된 재벌총수급은 손길승 전 SK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2명에 그쳐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검찰은 한나라당에 100억원 이상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난 삼성, LG, 현대차 등

의 재벌 총수들을 전원 불입건 조치했다. 대신 검찰은 각 기업의 구조조정본부장급

임원을 전원 불구속 기소하는 수준에서 처벌 범위를 최소화했다.

기업들이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자금을 제공했을 뿐이고 경제가 어렵다는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검찰의 설명도 나름대로 설득력

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선처가 앞으로도 이탈리아의 '마니폴리테'처럼 검은돈을 주고

특혜를 얻는 정경유착의 재발을 막고 비자금 조성 관행을 없애는 등 기업의 투명성

을 제고하는 데 실제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남긴 게 사실이다.

재벌기업들은 96년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 당시 내로라하는 기업 총수 7명이

뇌물공여 혐의로 줄줄이 기소되는 홍역을 치른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여전히

정치권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대선자금 수사는 기업인과 관련한 처벌 수위 및 대상에 있

어 오히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나 작년 1월 재계에 큰 파장을 던진 SK 수사 보

다도 다소 미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박근용 간사는 "검찰이 정치권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으로 국민적 성원

을 얻었다고 해서 재계에 대한 미온적이고 선별적인 법집행까지 용납될 수 있는 것

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