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드레스 투 킬 (Dressed To Kill)'

노출이나 접촉도 없이 에로틱한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 투 킬'(1980)은 예외다.

'스카페이스' '미션 임파서블'의 드 팔머가 1980년 완성한 사이코 스릴러다. 이중 인격을 지닌 정신과 의사에 의해 죽은 엄마를 위해 아들과 살인자로 몰린 매춘부가 범인을 잡는다는 줄거리다.

'부정한 여인'에 대한 가혹한 응징이 살인의 이유다. 얼마나 부정한 여인일까. 그 답은 도입부의 미술관 장면에 있다.

주인공 케이트 밀러(앤지 디킨슨)는 아들과 함께 사는 중년. 의사에게도 야릇한 제안을 할 정도로 늘 성에 굶주려 있다. 어느 날 미술관을 찾는다.

그림을 감상하는 그녀 옆에 한 남자가 앉는다. 흘낏 훔쳐본다. 갑자기 '하룻밤의 뜨거운 정사'가 그리워진다. 얼굴이 마주치자 살짝 웃음을 던진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리고는 일어서 가버린다.

자신의 유혹이 먹혀들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이 입가에 흐른다. 애궂은 장갑을 쥐어 뜯는다. 그래도 한번 마음이 흔들린 그녀는 남자를 따라 일어선다.

그러나 남자는 그림을 감상하는 척 하면서 이리저리 피한다. 더욱 몸이 단 그녀. 애절한 눈빛으로 남자를 따라 다닌다. 그러다가 남자를 잃어버린다.

허탈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오는 그녀. 큰 길가 택시 안에서 남자가 부른다. 그녀의 장갑 한 짝을 들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택시를 탄 그녀는 운전기사의 눈빛을 받으면서 뒷자리에서 섹스를 한다.

약 5~6분에 이르는 미술관 장면은 스릴의 극치를 보여준다. 앤지 디킨슨은 성에 몸이 단, 천박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중년 여인을 리얼하게 연기했다. 그녀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카메라는 그녀의 마음처럼 애절하다.

에로틱함은 택시에서 끝이 난다. 낯선 남자와의 정사는 더 이상 표현되지 않는다.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는 것이 구차할 정도로 미술관 장면은 압권이다. 미술관 장면이 '전희'라면 택시 안에서의 섹스는 '엑스터시'인 셈이다.

성을 갈구하는 것이 죽음의 죄가 될까. 그러나 영화는 단호하게 응징한다. 낯선 남자와의 정사를 치른 그녀의 짜릿함은 그가 성병환자라는 사실을 알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그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선글래스를 쓴 금발 '여인'의 면도칼에 난자 당한다.

미술관 장면이 '전희'라면 도입부의 샤워신은 섹스의 도화선을 붙인 '성 환상'이다.

뜨거운 김이 서린 샤워실. 물줄기를 받으며 케이트는 자신의 몸을 더듬는다. 비누를 쥔 손이 자신의 몸 구석 구석을 어루만진다. 벌어진 입에서는 서서히 뜨거운 입김이 새 나온다.

그러다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남자의 손. 한 손은 그녀의 입을 막고, 한 손은 다리 사이를 휘어잡는다. 그리고 비명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이 장면은 성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환상을 그린 장면이다. 이 장면 때문에 미술관에서의 성적 행동이 리얼한 성과 연관될 수 있었다.

브라인 드 팔머 감독은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렬한 추종자. 알다시피 히치콕은 '사이코'에서 환상적인 샤워장면을 보여준 적이 있다. '드레스 투 킬'의 엘리베이터의 난자 장면과 샤워실 장면은 '사이코'의 샤워장면을 두개로 나눠놓은 것이다.

'드레스 투 킬'은 극장 개봉 후 비디오로 출시됐다. 워낙 초기에 출시돼 비디오는 희귀본이 됐다. 지난해 DVD로 출시되면서 최근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물론 DVD에는 극장 개봉판에서 잘린 장면도 잘 복원돼 있다. 그래서 샤워 장면도 훨씬 리얼하다. 재미있는 것은 DVD 타이틀의 헤어누드. 출시사는 이 장면을 삭제할 수가 없어서 장면 전체가 검게 나오도록 처리했다.

DVD 리뷰 인터넷 게시판에는 여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이 올라왔다. 그러나 한 '대가'가 그 해답을 제시했다. "그건요. 탐색기능으로 보면 다 보여요".

에로킹(에로영화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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