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하는 오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정끝별 '밀물'

*'가까스로'에 주목하기 바란다.

가까스로 지하철을 타고, 가까스로 마감날짜를 지켜 부도를 막고, 가까스로 해고를 면하고, 그대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가까스로 아내의 남편이고 남편의 아내이고, 부모의 자식이고 자식의 부모이고, 가까스로 궁핍한 나라의 궁핍한 시민이다.

가까스로에 주목할 때 '미끄러지듯'의 질감을 느낄 수 있고, 상처를 치유하는 '손'의 따뜻함을 체감할 수 있고, 가까스로에 주목할 때 "무사하구나 다행이야/응, 바다가 잠잠해서" 뒤에 여백으로 처리된 가난한 삶의 서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배의 의지와 관계없이 밀물이 지듯 그대 의지와 상관없이 봄날은 간다.

가까스로!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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