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은 배낭에 얼굴을 박고 있던 나는 선잠에서 깨어난다.
무슨 까닭인지 버스가 도로 가운데 멈춰서 있다.
덜컹대던 낡은 버스 창문 너머로 인도 중부 데칸고원의 젖빛 아침이 라르고로 밝아온다.
하지만 일교차로 인한 아침 안개로 시계가 불투명하다.
수령이 수백 년은 되었을 벵골 보리수와 그 너머로 넓게 펼쳐진 노란 유채밭이 안개를 배경으로 목가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오전 여섯 시 반이다.
어젯밤 열한 시경에 뭄바이를 출발했으니까 예정대로라면 목적지인 아우랑가바드까진 아직 두 시간 넘게 남아 있다.
낡은 창문 틈으로 들어온 차가운 바람에 밤새 노출된 탓인지 몸이 으슬으슬하다.
나는 목도리를 여미며 주위를 돌아본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아직도 잠에 빠져 있다.
안개 낀 도로 위에는 버스며 트럭들이 앞뒤로 끝 모르게 길게 늘어서 있다.
아마 앞쪽 어딘가 사고가 난 모양이다.
겨울철의 고원지대는 안개가 잦다.
그 때문에 종종 교통사고가 나기도 한다.
*겨울 고원지대 안개 잦아
문득 창 아래쪽에 시선이 머문다.
관목 숲이 듬성듬성하게 자란 도로 가녘을 따라 인도남자들이 이곳 저곳에 엉덩이를 드러낸 채 볼일을 보고 있다.
해뜨는 시간에 볼일을 보는 건 그들의 오랜 관습이다.
정체된 버스와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로 일견해도 십 수명은 될 듯하다.
그들 손에는 용변을 마치고 씻을 작은 플라스틱 물병들이 들려 있다.
하나같이 도로 방향으로 앉아 있어서 아래쪽 밑천까지 훤하게 드러나 보인다.
허나 인도인들은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
외려 버스 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내게 말똥말똥한 눈길을 보낸다.
민망하게 된 건 이쪽이다.
난 멋쩍은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아침이 환하게 밝아서야 길이 뚫렸는지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도 짜증이나 불만을 드러내진 않는다.
그런 그들의 느긋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 내심 부럽다.
일초만 출발이 늦어도 빵빵거리는 한국의 교통 현실이 떠오른다.
어쩌면 인도인들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괜히 발을 굴리며 조바심을 쳐봐야 막힌 도로가 뚫릴 리 없는 것이다.
차창 밖으로 데칸고원 특유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끝 모르게 펼쳐진 넓은 평야에는 해바라기 밭과 사탕수수밭, 하얗게 꽃을 피운 목화밭이 차례차례 지나간다.
수숫대로 지은 초막집과 푸른 밀밭이 보이기도 한다.
가끔은 휴경지인 듯 텅 빈 들판이 나타나고, 그 한가롭고 낡아 보이는 풍경은 왠지 우리네 70년대의 빈한한 농촌을 떠올리게 한다.
*인도인 영양음료 '짜이'
아우랑가바드는 불교석굴 사원이 있는 엘로라와 벽화가 그려진 석굴이 있는 아잔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도시다.
그래서인지 역 주변에는 여행객을 위한 숙소가 많다.
그러나 비싼 요금에 시설도 마땅찮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값싼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푼다.
샤워를 하려 했지만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나중 알았지만 옥상에 마련된, 장작을 때서 물을 데우는 보일러는 식전에만 불을 피우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찬물에 몸을 씻고 밤새 버스에 시달린 몸에 휴식을 취한다.
고원지대는 아침은 선선하고 낮엔 햇살이 따갑다.
욕실에서 양말 따위의 밀린 빨래를 해치운 뒤 게스트하우스 3층 창을 통해 우리네 초가을 날씨를 연상시키는 따가운 햇살과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를 본다.
기차표를 예매할 겸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숙소 부근의 작고 허름한 짜이(인도식 밀크 티) 가게 앞에 걸음을 멈춘다.
짜이를 마시며 서성이던 서너 명의 남자들 중에서 한 명이 대표격으로 내게 말을 붙여온다.
'Witch country?'
국적이 어디냐는 인도식 영어다.
인도 여행에서 가장 흔히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이어서 기다렸다는 듯 엘로라나 아잔타로 갈 택시를 구하지 않느냐고 의중을 드러낸다.
호객꾼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나는 2루피(한화 약 60원)를 주고 짜이를 사 마신다.
끓인 우유에 홍차와 생강을 비롯한 향료를 넣은 짜이는 달콤하면서 부드럽다.
식생활이 부실한 가난한 인도인들이 그나마 쉬 마실 수 있는 영양음료인 셈이다.
천천히 역전 거리로 걸음을 옮긴다.
역전으로 이어진 백여 미터 남짓한 길 양편으로 무려 여덟 개나 되는 복권판매소가 성업중이다.
지난 번 방문 때보다 배나 늘어난 숫자다.
가난한 인도인들 역시 복권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복권을 통해 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것일까.
작은 당무와 토마토, 코코넛, 렌즈콩, 감자 따위를 파는 가게들과 개들과 소가 어슬렁거리는 삼거리를 지나 역으로 간다.
항상 지린내가 풍기는 역전엔 걸인과 릭샤꾼들이 득시글거린다.
그들의 호객을 피하여 역으로 들어가서 책을 파는 매점으로 간다.
인도를 여행하기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기차시각표(Timetable)을 사는 일이다.
그 책만 읽고 사용할 줄 안다면 인도여행은 반쯤 수월해진다.
기차표 예매소는 항시 여행객들로 붐빈다.
예매소 직원들의 작업 속도가 워낙 느리기 때문이다.
줄을 서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 막상 내 차례가 왔을 때 창구직원이 무심하게 말한다.
컴퓨터가 다운되었으니 기다려요. 언제 컴퓨터가 원상 회복될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구내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막연하게 기다린다.
기다림은 인도의 일상이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간 다음 털털대는 로컬버스로 갈아타고 엘로라에 도착했을 때는 햇살이 뜨거운 하오 시간대다.
*바위산 통째 파내
엘로라 석굴 사원군은 거대한 암벽 바위를 파서 만든 사원들로 1군에서 34군까지 산기슭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난 느긋하게 1굴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햇살이 강했지만 데칸고원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으로 그다지 더위가 심하지는 않다.
제일 큰 석굴사원인 제 16굴 까일라사나트 사원 앞에 나무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바위산 하나를 통째로 파낸 거대한 석굴사원이 놀랍게 마음을 압도한다.
아잔타 석굴도 그렇지만 이 엘로라의 사원군들은 1세기가 넘는 세월과 노동의 축적물이다.
신의 작품처럼 위대한 암벽사원을 조각하기 위해 수많은 석공들이 밤낮을 잊고 심신을 던져 일을 했으리라. 단지 쇠망치와 끌만으로 이루어진 작업은 아마도 신을 향한 지극한 염원과 신앙심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석굴은 이제 옛날 신을 향한 인간들의 가이없는 숭배의 증거물로, 유적지로 남아 있다.
부질없는 상념에 잠긴 사이 구식 카메라를 손에 든 인도 청년이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One Photo?'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말이다.
사진을 찍는 동안 그의 동료로 보이는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그들은 나와 함께 사진 찍기를 요구한다.
나는 유명 연예인처럼 그들과 함께, 또 한 명씩 어깨동무까지 해가며 팔자에 없는 모델이 되어주고서야 겨우 풀려난다.
패키지 여행을 온 듯한 한 무리의 서양인들이 길게 줄을 서서 석굴로 들어간다.
지난한 역사를 잊은 인도인들의 웃음소리가 기포처럼 고원지대로 퍼져나간다.사진: 아우랑가바드에 있는, 아우랑제브 황제의 첫째부인이었던 베굼의 묘. 타지마할을 본 따 만든 비비까 막바라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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