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간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된 것이 지난 4월1일이니까 이제 3개월이 지났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정부나 경제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내던 경제의 상호 보완 효과나 대 칠레 무역수지 개선 효과는 나타나고 있는가. 또 우려했던 것처럼 칠레산 과일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와 전국 생산량의 32.8%를 차지하는 경북의 과수농가를 위협하고 있는가.
지난달 중순 경북도의원들의 남미연수단에 참가, 한국 사람보다 한국산 자동차가 훨씬 더 많이 다니는 나라 칠레를 찾았다.
▲칠레라는 나라는
칠레는 잘 알려진 대로 남북의 길이가 무려 4천270㎞에 달하면서도 동서로는 평균 폭이 200㎞도 되지 않는 허리띠를 세로로 세워놓은 듯한 나라다.
때문에 행정구역도 가로로 마디를 자르듯이 잘라서 13개로 나누어 놓았다.
수도인 산티아고는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내는 중부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나라로 계절이 정반대고 시차도 13시간이 난다.
칠레로 가기 위해서는 미국 LA를 거쳐 산티아고로 가는 방법이 최단거리다.
그래도 비행기 타는 시간만 만 하루를 넘겨야 할 정도로 먼 나라다.
칠레라는 명칭은 원주민 언어의 '칠리(Chilli)-땅이 끝나는 곳'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말 그대로 칠레의 남부는 남극을 바라보는 빙하지역이다.
반면 북쪽 끝은 사막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칠레는 남미에서는 가장 잘 사는 나라다.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 걸쳐 모범이 될 만하다.
연 3.3%의 성장률과 1.1%의 물가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컴퓨터 보급률과 유선전화 그리고 인터넷보급률이 남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디지털 신경제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는 새로운 시장이기도 하다.
또한 칠레는 남미 국가들과 무관세 협정을 맺고 있어 우리에게는 남미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칠레간 FTA
올들어 한-칠레간 교역량이 급증하고 있다.
FTA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FTA 이전에도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한국산 휴대전화의 성가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게 교민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FTA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냉장고와 세탁기도 여전히 칠레 가전 시장에서 대표적 효자 품목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과실류의 수입이 급증한 때문은 아니지만 올 무역적자 폭은 벌써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지난 한 해(5억4천100만달러) 수치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수출은 걷는데 수입은 날았다는 평가다.
주춤했던 우리의 주요 수출품인 휴대전화와 자동차는 6%의 관세 철폐로 당장 수출이 늘었다지만 동광 등 원자재를 중심으로 한 수입증가율이 우리 수출증가율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나 적자폭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단기 수치로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정부가 각종 경제 단체의 무역적자 축소 내지 해소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는 것이어서 주의가 요망된다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아직 남미 진출의 교두보라는 칠레 시장의 역할이 부각되지 못한 때문도 있겠지만 좀더 면밀한 시장 조사와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경북도 명예자문관을 겸하고 있는 이순덕(李順德) 칠레교민회장 등 현지 교민들도 입을 모았다.
물론 이들은 한-칠레 FTA 체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칠레 시장에서 늘면 늘수록 교민들이 입김은 확대될 것이라는 게 그들의 기대였다.
▲칠레의 과실농업
칠레는 세계 24위의 농산물 수출국가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특히 포도수출 세계 1위, 자두 세계 2위, 사과.배.키위 세계 3위라는 기록은 칠레가 적어도 과수농업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수치여서 경북지역 농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수출용 과실과 채소류는 1천ha이상 경작규모를 가진 기업농에 의해 주로 생산되고 있고 돌이나 델몬트 등 과일 시장에 잘 알져진 세계적 다국적 기업이 수출물량의 70% 이상을 다루고 있어 우리 과수 시장도 직간접적으로 이들의 영향권 안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칠레 농업부 농정국(ODEPA) 자료에 따르면 2002년 토지소유 규모별 농업경영체수와 경작면적 현황에서도 500ha 이상 대농은 개체수에서는 불과 1.6%에 그쳤지만 면적에서는 72.6%를 차지, 칠레 농업을 기업형태의 농업이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 대규모 기업농은 또 대량 생산, 수확, 선별, 포장, 수송 등 체계적 물류 시스템을 갖추고 내수보다는 수출 위주의 활동에 주력해 북미 및 유럽 지역에 대한 과실 공급 기지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최근 대유럽 과실 수출의 채산성이 낮아져 북미 및 아시아 특히 동북아 시장 개척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ODEPA에 따르면 포도는 2002년 총 과실 재배면적 약 30만ha의 절반이 넘는 16만5천㏊를 차지 단연 1위를 기록했다.
사과가 3만5천500㏊로 2위, 복숭아가 1만7천800㏊로 3위를 차지한 것을 볼 때 포도의 우월적 지위는 짐작이 간다.
▲옥타비오 소토마이어 농정국(ODEPA) 부국장
농업은 한국에서도 예민한 문제라고 알고 있다.
서로 좀더 알고 깊이 이해해서 한쪽만 잘 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양쪽 다 잘 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 칠레의 농업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농업인은 물론 기업인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농업인의 FTA 결과에 대한 위기감을 잘 알고 있다.
칠레 농업인들도 아르헨티나와 블라질과의 경쟁에서 모두 느낀 바다.
칠레의 곡물류 생산은 10년만에 27.8% 감소했다.
아르헨티나 등과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다.
칠레 언론에서도 한국 농업인의 데모 사진과 기사가 많이 게재됐다.
칠레 국민들도 많이 놀랐다.
칠레 과일은 한국 과일과 출하 시기에서 상충되지 않는다.
위기감을 많이 갖지 않아도 된다.
칠레산 주요 과일은 한국내 비관세 예외 품목이고 시기적으로도 제한을 받고 있다.
▲도의원들의 평가
30, 40일이나 되는 칠레산 과실의 수송기간을 감안할 때 국내 과실 농업이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양보다 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친환경농업과 과학영농 등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
출하 시기 조절로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위기다.
칠레 포도의 출하 시기는 3월말에서 6월말까지지만 이를 조금 앞당겨 관세 인하를 받는 4월 이전에 수입, 최첨단 기술의 시설에 냉장 보관되다 출하된다면 5, 6월경이 출하 시기인 국내산 시설포도와 충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저온저장 과실류의 피해도 예상된다.
칠레산 포도가 관세를 인하(4.14%)받고 들어오는 시기(11~4월)에는 다른 과실의 소비 축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과실농업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피해가 예상돼 전반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경우 과실 농업 연쇄 붕괴 가능성까지도 우려된다.
이와 함께 농산물 저장 산업의 피해도 고려 사항이다.
FTA대책이 수립됐다고는 하지만 WTO대책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농후하다.
당시는 42조원이나 되는 돈이 투입됐지만 농촌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돈만 준다고 될 일이 아니라 확인과 점검이 더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칠레산 와인
와인은 우리나라에서도 칠레산 가운데 가장 각광을 받는 품목이다.
FTA발효 직후인 4월 한달 동안 와인은 264%의 수입 증가율을 보였다.
가격이 저렴한 반면 품질에서는 본고장인 프랑스나 미국산에 비해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15%인 와인 관세도 매년 2.5%씩 내려 5년 후에는 무관세가 된다.
칠레는 양질의 포도를 생산하기 위한 최적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국토의 4면이 꽉 막혀 있어 포도에 치명적인 병충해는 찾을 수 없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포도농장이 병충해로 황폐화됐을 때 칠레는 아무 피해가 없어 프랑스 와인업자들이 대거 이주했다고 한다.
남아메리카의 보르도라는 명칭은 이 때 얻은 것이다.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는 산티아고 남쪽 중부지역 약 1천300㎢에 이르는 포도재배지는 신선한 바다 바람과 안데스산맥에서 내려오는 찬 기류로 포도의 산도를 유지시켜주고 생장기에는 강수량도 거의 없어 당도가 높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자연적 환경이 칠레산 포도와 와인의 명성을 드높이는 원인이라는 것이 산티아고 근교에 위치한 운두라가(UNDURRAGA)와인 공장의 게르만 리에스코 홍보담당의 설명이다.
이 공장에서 직영하는 포도밭을 방문했다.
면적은 140㏊. 800㏊짜리 포도밭이 하나 더 있다고 하니 모두 합하면 약 280만평이 넘는 넓이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칠레에서 와인 생산량으로 20위안에 들지 못한다.
칠레의 포도 농업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