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래동화-가난뱅이 과거 보기

옛날 옛적 어느 시골에 한 아이가 살았는데 집이 참 가난했어. 너무 가난해서 서당에 다닐 형편도 못 됐어. 그래서 남들 서당에 다닐 동안에 저는 오줌장군 지고 들에도 가고, 지게 지고 산에도 가고, 이랬지. 그러다 보니 어찌나 글공부를 하고 싶은지, 일하는 틈틈이 서당에 가서 문틈으로 가만히 동냥글을 배웠어.

그렇게 눈치코치로 배운 동냥글이 남들 옹글게 배운 글보다 나아서, 몇 해 동안 배우고 나니 모르는 게 없거든. 마침 서당 도령들이 과거 보러 서울 간다기에 저도 따라 나섰지. 그런데, 가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하려면 노자가 있어야 할 텐데 어디 돈 한 푼이나 있어야지. 빈털터리니까 부잣집 도령들 짐을 대신 지고 따라갔어. 가다가 도령들이 주막에 들면 따라 들어가서 밥 한 술 얻어먹고 잠도 자고, 이러면서 갔지.

부잣집 도령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너 한턱, 나 한턱, 이렇게 돈을 써 가면서 가는데 가난뱅이는 빈털터리니까 밥 한 그릇 못 사는 거야. 그러니까 부잣집 도령들이 그만 심통이 났나 봐. 하루는 이 가난뱅이를 큰 나무에 매달아 놓고 저희들끼리 가버렸어.

"너 한턱내려거든 따라오고, 안 그러면 오지 마라."

이러고서 가버렸지.

가난뱅이가 나무에 매달려 울고 있으니까, 마침 정승 딸이 외갓집에 가느라고 그곳을 지나다가 무슨 일로 우느냐고 물어. 일이 이만저만해서 과거를 못 보러 가는 게 한이 돼서 운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정승 딸이 외갓집에 주려고 가지고 가던 음식을 다 내주면서 이걸로 한턱내고 따라가라고 그러는 거야. 가난뱅이는 그 음식을 받아 가지고 부리나케 도령들을 따라가서 한턱냈지. 그 덕분에 도령들과 함께 과것길을 가게 됐어.

부잣집 도령들은 또 서로 돌아가면서 너 한턱, 나 한턱, 이렇게 돈을 써 가면서 가는데 가난뱅이는 또 얻어먹기만 하면서 따라갔지. 그러니까 부잣집 도령들이 또 심통이 났나 봐. 하루는 가난뱅이더러 길가 큰 집 안에 있는 배나무에 올라가 배를 따오라고 시켜 놓고, 배따러 나무에 올라간 새 저희들끼리 도망을 가버렸어.

"너도 노자가 생기거든 따라오고, 안 그러면 오지 마라."

이러고서 가버렸지.

가난뱅이는 나무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울고 있었어. 그런데 이 집이 마침 정승 집이라, 정승이 잠을 자다가 커다란 용 한 마리가 저희 집 배나무에 올라가 있는 꿈을 꿨네. 꿈을 깨어 배나무에 가 보니 아니나다를까 웬 사내아이가 울고 있거든. 무슨 일로 우느냐고 물으니 일이 이만저만해서 과거를 못 보러 가는 게 한이 돼서 운다고 그런단 말이야.

"만약 네가 과거에 급제하면 내 딸과 혼인하겠느냐?"

"그리하겠습니다."

정승이 노자를 좀 주기에, 가난뱅이는 또 부리나케 도령들을 따라갔어. 그래서 무사히 과거장에 들어갔지. 들어가서 다들 과거를 봤는데, 가난뱅이만 급제를 하고 다른 도령들은 다 떨어졌어.

가난뱅이는 약속대로 정승 딸과 혼인을 해서 잘 살았대. 정승 딸이 본래 조막손이였는데, 가난뱅이와 혼인하고 나니 손이 짝 펴지더래. 그래서 사람들이 다 천생연분이라고 그러더래.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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