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을 때 왜 잘 챙겨주지 못했던지…. 거기선 아무 걱정없이 살아. 며칠 있다가 다시 올게."
많은 사람들이 성묘에 나선 지난 12일, 국내 최대 규모 납골당이 있는 영천 만불사 왕생단에서 한 중년 남자는 한동안 유골함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모신 분이 누구냐"고 묻자, "마누라요"라고 짧게 답한 이 남자는 "이 사람아, 뭐가 바빠 그리 먼저 가누"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추석을 앞두고 산과 계곡마다 벌초에 나선 이들로 가득하다.
반면 납골당에 유골을 모신 유족들은 가슴 가득 애틋한 사연을 안고 납골당을 찾는다.
수천개는 족히 될 듯한 왕생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꽃다발이나 초콜릿 등과 함께 붙이거나 매달아둔 편지들. 저마다 회한과 사랑, 그리움을 담고 있다.
'할머니 저 ○○예요'라고 편지를 시작한 초등학생 손녀는 "할머니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엄마 아빠를 지켜 주세요"라며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40대 중후반으로 짐작되는 한 아들은 "다시 한 번 아버지를 모실 기회가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텐데, 아버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께 받은 것만 있고 해드린 게 너무 없습니다.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꼭 제 아들로 태어나세요. 제가 받은 것의 천배, 만배를 돌려 드리겠습니다"라며 장문의 사부곡(思父曲)을 올렸다.
사고로 한꺼번에 가족을 잃은 듯한 한 가장은 '보고 싶은 아내와 귀여운 내 딸아'라고 편지를 시작해 두 사람의 극락왕생을 빈다는 축원과 함께 '생전에 좋아했던 흰 장미와 음료수를 함께 올린다'는 편지를 붙여 모든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아내의 편지는 더 애틋했다.
"…오늘 아침 비바람을 무릅쓰고 학교로 향하는 두 아이를 보면서, 당신이 계셨더라면 차로 태워다 줬을 텐데 하는 생각에, 당신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여보, 오늘밤에도 환히 웃는 얼굴로 우리들 곁으로 찾아오세요."
한 초등학생은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과 더불어 "보고싶은 엄마께. 엄마, 왜 요즘은 제 꿈나라로 놀러오지 않나요? 벌써 절 잊은 건 아니죠? 저는 지금도 엄마사진 지갑에 넣어 다니며 매일매일 엄마얼굴 보고 있는데…. 엄마 보고 싶어요"라는 편지글을 붙여놓았다.
한 할아버지는 "수년 전 훌쩍 떠나버린 야속한 아내를 만나고 간다"면서 몇번씩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다음 주 초 다시 한 번 와보슈. 훨씬 더 많은 편지가 붙었을 테니…. 그걸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될 거요. 서로 사랑하고 감싸면서 사시오." 할아버지가 남긴 말이 내내 귓전을 맴돌았다.
영천.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