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폐쇄적인 지역 사회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주부들이 자리잡고 있다.
매일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달라져 가는 대구·경북 주부들의 생활 및 사회의식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가정·경제·문화 여가생활 등 총 12회에 걸쳐 주부들의 변화된 가치관과 생활상을 짚어보는 좌담회를 가졌다.
과거와 달라진 주부들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이를 사회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건강하게 승화시키려면 어떠한 과제가 남아있는가. 지난 8일 전문가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
남인숙(55) 대구가톨릭대 교수(교육학·여성학)
박인애(51) 대구주부아카데미협의회 상임고문
채성수(46) 열린병원 원장
▲남인숙=보수적인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주부들의 모습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나이 든 세대들은 보수적일 수 있지만 새로운 세대가 계속 나오니까요. 그들은 보수적이지 않거든요. 이 지역이 보수적이라는 건 여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아요. 남자들은 생업이 있으니까 조직 속에서 어떨지 모르지만 주부들은 기획프로그램도 많이 접하고 주부교실 등 강의를 많이 듣기 때문에 의식은 굉장히 앞서갑니다.
낮은 출생률, 높은 이혼율, 동거문화 등 사회적으로 많은 부분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주부가 달라지는 모습도 하나의 현상이지 않겠습니까.
▲채성수=매일신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아줌마의 모습이 밝고 건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0년 전쯤 이런 조사가 있어서 이번에 비교가 됐다면, 또 우리 지역이 보수적이라면 개방적인 서울과 비교한다면 지역 현실을 아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특집기사들이 결국은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인애=주부들이 모여서 월례회를 가질 때 자녀문제, 사회, 정치, 문화까지 얘기를 많이 나누는데 주부들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자기 개발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장구, 다도, 매듭 등을 배우고 자녀 건강까지 챙기려고 수지침을 배우는 분들도 있고….
▲채=실제로 사회적인 변화는 분명히 있고 집 밖에서는 상당부분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정에서도 변화가 이루어졌느냐 하는 부분에서는 의문이 갑니다.
남자가 군대에 가듯이 결혼 전에 아줌마 사관학교를 만들어 교육을 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혼이든 성 문제든 결혼 이후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결혼 전에 미리 배우는 게 여성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남=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배울 수 있는 사관학교를 만들자고 했는데 그건 옛날부터 있어왔어요. 제 어머니도 결혼 전에 꽃꽂이까지 다 배우며 신부수업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오히려 남자가 남편 되는 법, 아버지되는 법을 배워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이혼 제기를 하고 가정에서 문제가 더 많은 사람은 여자지 남자가 아니거든요. 대한민국은 결혼만족지수가 여자보다 남자가 더 높은 나라니까요.
▲채=실제로 미국 같은 경우를 보면 주부들이 몸 망가진다고 애를 더 안 낳으려 하고 자기의 인생을 더 중요시합니다.
부모로서의 일정한 역할만 한 이후로는 자식이 알아서 살도록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경우도 앞으로 주부들이 자신의 삶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획물이 1회에서 12회까지 연재된 건 실제로 아줌마가 겪는 많은 문제들, 해야 될 일들이 그만큼 많다는 건데 그걸 다 잘 하지 못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런 어려움을 줄여나가는 방법은 뭘까요.
▲남=사회제도를 고쳐야 돼요. 미국의 경우 세금을 제대로 내기 때문에 중산층 부모들이 자식에게 대줄 돈이 없어요. 자녀는 국가 사회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확산돼 있기 때문에 미혼모가 낳은 아이도 지원해 줍니다.
고교만 졸업하고 집 밖으로 내보내도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큰 돈 들이지 않고 공부하고 더 좋은 학교로 옮길 수 있고 장학금제도도 많아 부잣집에서 안 태어나도 자신이 원하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제도가 돼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부모들이 도움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박=생각의 변화 없이는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으므로 두가지가 병행돼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사회제도적 장치가 되면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자녀는 스스로 키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애를 보육시설에 맡기려니 못 미더워 어머니에게 맡기는 거예요. 믿을 수 있게끔 하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하고 사회제도가 병행돼야 합니다.
▲남=여성들은 공동체의식이 있어야 하거든요. 여자에게 네 자식만 잘 키우라고 사회에서 요구해서는 안되죠. 그것 때문에 남편 모르게 과외 교사를 한도 끝도 없이 비싸게 들이기도 하잖아요. 우리는 단절돼 있어요. 예절이 왜 깨지는데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너무 바빠서 과외 수업 나가고 엄마한테 인사할 시간도 없어요. 오히려 엄마가 시간이 있어서 잘 다녀오라고 애한테 인사해야 해요. 애가 지겹도록 엄마가 달라붙어서 매니저 역할을 하는데 그렇게 안 하고도 주부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돼요.
▲채=주부들이 홀로 서기 하는 건 남편에게 문제가 생기니까 다 되더라구요.(웃음)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때는 아무리 알코올로 인한 문제가 있어도 병원에 입원을 안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술 먹고 일도 안 하고 먹고 살 일이 막막하면 할 수 없이 아내가 일을 하기 시작하거든요. 아내가 돈을 버는데 집에서 노는 남편이 난동을 부리거나 술을 마시게 되면 아내가 입원을 결정하는 거예요. 수동적인 삶을 살던 여성의 독립도 실제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거죠.
아줌마가 결혼 초에는 남편 보고 살다가 애들 키우다 보면 실제로 자기에게 남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결혼 초부터 자기 삶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의처증, 의부증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 공유하는 영역이 100% 포개지기를 원하거든요. 저는 30%만 포개지고 나머지 70%는 자기 영역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주부가 자기 시간을 가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남편일 경우 같이 부부 상담을 받으러 오라 하는데 이런 경우 남편은 진짜 말이 안 통합니다.
▲남=그런 남편은 자기는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아내는 집에서 편하게 있으면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여자들이 왜 결혼할까 물어봐야 해요.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가 하라고 해서, 집에 밥 먹을 게 없고 나이가 차서… 이유를 따져봐야지요. 결국 책임이 자신이라는 걸 알면 정신이 바짝 돌아옵니다
유해 불량식품 문제 등이 생기는 것도 책임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가족이기주의거든요. 대통령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잘못 하면 책임을 지우는 등 위에서부터 모범을 보이면 책임 문화가 확산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남편의 책임이 돈만 갖다 주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정이 잘못되는 거예요. 결혼 전에 부부가 같이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미국의 경우 결혼 전에 부부가 같이 정해진 교육을 받아야 혼인 신고가 되는 주도 있어요.
▲박=자기 개발된 사람은 봉사하게 돼 있습니다.
뭔가 하나를 배우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하는 게 본능이거든요. 예를 들어 수지침을 배우면 복지회관에 가서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개발이 안된 사람은 왜 내가 나가야 하나 하지요.
▲채=봉사를 하는 이타주의는 정신적 성숙도에서 상당히 높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사실이지만, 자기 개발을 위해 책을 한권 읽는다든지 무료 강좌를 가든지 최소한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두는 것만으로도 최초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발전해 자기도 모르는 능력이 발견돼 더 하게 되거든요.
▲박=수동적인 태도에서 자발적이 되려면 우선 몸이 건강해야 해요. 스포츠센터를 찾는다든지 걷는다든지 다양한 방법이 있잖아요.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어디 가자 하는 게 안 되는데 내 마음이 건강하고 자유로워야 어디서 무엇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거예요.
▲채=인터넷에서 아줌마를 검색어로 치면 지하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리에 가방을 던져 놓고 앉는다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고 결국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주부들이 시간을 쪼개서 효율적인 삶을 살도록 하려면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여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이 없으면 안돼요. 자신에게 부족한 게 무엇이고 원하는 게 뭔지, 나는 누구냐를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에서 해야 할 것,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도 나올 거 아닙니까.
▲박=긍정적으로 끌어나가려면 아줌마들도 대인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50대를 살고 있는 주부, 아줌마로서 자식, 남편보다 친구가 더 중요해요. 내 생활, 취미, 친구가 있고 자식, 남편이 있는데 부러울 게 없지요.
▲남=사회제도적으로 호주제만 없어져도 남녀 차별이 적어지기 때문에 똑같이 자식 낳아서 고생한 아줌마들의 애환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탁아보육제도가 제대로 정착돼야 하고 남편의 육아휴직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아버지가 학부모회의 30% 정도를 채울 수 있도록 해 남자를 가정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여자들이 자기 개방을 못 하는 이유가 두려움도 있지만 자신에 대한 무지 때문일 수도 있으므로 자신을 개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채=내·외적으로 부정적인 아줌마의 이미지는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살려고 한 결과이지 않습니까.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고 건전한 방향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아줌마가 많은 역할을 해야 하고 그 때문에 힘들다는 걸 인지하고 사회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아줌마 스스로도 자신을 위해서, 또 아줌마라는 역할이 남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자신의 개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결국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어머니'로 봐야 되는 겁니다.
▲박=어머니들이 건강해야 합니다.
어머니들의 건강한 정신이 자녀, 이웃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너무 자기 자식, 남편, 시댁을 챙기는 이기주의보다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면 쉽게 열리거든요. 주부들이 내가 아줌마인데 하는 생각보다는 한 인격체로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마음 먹으면 할일이 너무 많을 것 같아요.
정리·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 왼쪽부터 채성수씨, 박인애씨, 남인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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