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에 대해 성찰한 네 지성의 대화

피천득(94) 김재순(81) 법정(72) 최인호(59). 50대 후반에서 90대에 이르는 네 사람의 지성이 삶의 보편적 주제들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월간 '샘터' 지령 400호 기념으로 지난해 이뤄진 피천득-김재순, 법정-최인호의 대담을 묶은 대담집 '대화'(샘터 펴냄)가 최근 출간됐다.

이들은 대화를 통해 신앙과 종교, 예술, 정치, 죽음, 행복, 사랑, 가족, 자아, 깨어 있음, 여유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공교롭게도 10년씩의 세대 차이를 지닌 이들은 같은 주제를 놓고 각자 다른 삶의 궤적 속에서 겪고 느낀 바를 솔직하게 털어놔 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1부 '아름다운 인연, 잊을 수 없는 인연'에는 수필가이며 영문학자인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과 국회의장을 지낸 우암(友巖) 김재순 샘터사 고문의 대담이 실렸다.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삶의 경륜이 듬뿍 묻어난다.

"늙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죠. 사람이 오래 산다는 건 과거의 좋은 기억과 인연을 많이 가졌다는 뜻이기도 해요. 나이가 든다는 건 젊은 날의 방황과 욕망, 분노, 초조감 같은 것들이 지그시 가라앉고 안정된다는 의미이지요. 인생을 관조하고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고요. 늙음이란 물론 젊음만은 못하겠지만, 잘 늙는 경지에 이르면 노년도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어느 순간 죽음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겠지요."(피천득) "키케로는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 그것은 곧 죽음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했는데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철학의 종착지가 아닐까 합니다.

"(김재순) "만년의 아인슈타인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더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지요.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죽음을 배워야 하겠지요."

2부 '산다는 것은 나누는 것입니다'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맑고 향기로운 법문을 들려주는 법정 스님과 소설가 최인호씨의 대화를 담고 있다.

"느릿느릿한 삶, 진정한 여유를 갖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스님."(최인호) "그 무엇에도 쫓기거나 서둘지 않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 순응하는 것, 그러면서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음미하는 것, 그것이 느리게 사는 것, 여유있게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삶의 귀한 태도이지요."(법정)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요즘 사람들은 행복이 아니라 즐거움을 찾고 있어요. 행복과 쾌락은 전혀 다른 종류인데 착각을 하고 있지요. 진짜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눈, 그런 눈은 보통사람에게는 없어요. 그 눈을 어떻게 떠야 하지요?"(최인호) "안목은 사물을 보는 시선일 텐데 그것은 무엇엔가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과정을 통해서 갖추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어떤 이는 가격이 얼마라는 식으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의 가치로 보지요. 이는 똑같은 눈을 가졌으면서도 안목에 차이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법정)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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