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라가 미웠다"...성수대교 참사 10주년

"그날 아침 사고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담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고 국가에 배신감만 느꼈었지요." '성수대교 붕괴참사'로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故) 장세미(당시 17세) 양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유갑례(62.여.서울 당곡고) 교사는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20일 당시 사무쳤던 슬픔과 아픈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했던 1994년 10월21일 아침 일찍 보충수업을 마치고 담임인 3학년2 반 교실에 들어간 유 교사는 유독 술렁이는 학급 분위기에 의아해 하던 중 한 학생에게서 끔찍한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출석체크한 결과 세미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알게 된 유씨는 당혹스런 마음을다잡으며 곧바로 장 양의 집에 전화를 했다.

"세미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전했더니 어머니가 바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몇분 뒤 방송에 보도된 희생자 명단에 세미의 이름이 나오고..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지요" 세미를 '키가 크고 천진난만한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는 유 교사는 "직업반에있었지만 수학에 재미를 붙이면서 대학 진학까지도 바라보던 세미의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정도"라고 안타까워했다.

벽제에서 열린 장례식까지 찾아가 장 양의 '마지막'을 지켜봤던 유 교사는 "사고 당일 등교하는 딸에게 아침 평소 보다 늦게 밥을 차려준 세미 어머니가 '조금만일찍 일어났어도'라고 자신을 원망하며 오열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장 양 가족의 비극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장 양의 아버지 고(故) 장영남씨는 5년 후인 1999년 먼저 간 딸을 그리워하며 '성수대교 희생 영령 위령비' 옆에서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유 교사는 "국가에서 책임있게 다리를 시공했다면 그냥 다리도 아닌 한강다리에서 그런 비극이 생겼겠느냐"며 "정부가 보상을 해줬다고 하더라도 세미 가족에게 뒤따랐던 비극은 책임지지 못한 것"이라고 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당시 참사로 8명의 여고생을 떠나보냈던 무학여고는 마건일(59) 교장 등교사 4명과 학생회장 김현지 양 등 학생 3명이 함께 21일 오전 성수대교 추모비에서열리는 위령제에 참석, 헌화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로 했다.

마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숨져 간 선배 언니들을 위로하면서 이들의 못다한 꿈을 대신 펼쳐달라는 뜻에서 매년 추모비를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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