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몇 십 년을 두고 가슴에 든 멍이

누구도 모르게 품안고 살았던 멍이

이제 더는 감출 수가 없어

멀건 대낮

하늘에다 대고

어디 한번 보기나 하시라고

답답한 가슴 열어 보였더니

하늘이 그만 놀라시어

내 멍든 가슴을 덥석 안았습니다

온통 시퍼런 가을 하늘이

김형영 '가을 하늘'

멍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책도 없이 기막혀하는 사연의 속사정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우리는 하늘이 아닌 인간이어서 그 답답해하는 가슴속을 알 수가 없다.

하늘이 깜짝 놀라는 것으로 미루어 충격의 크기를 짐작하고, '내 멍든 가슴을 덥석 안는 '하늘의 자애를 통해 애석함의 깊이를 엿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황당무계에 가슴 다친 억울한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하늘이 푸르다는 것, 온통 시퍼렇게 멍들었다는 것.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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