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을 해보자. 정말 멋진 여자가 있다. 출중한 미모에 늘씬한 몸매, 이지적이고 섹슈얼한 이미지… 말 그대로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다. '보디 히트'의 캐서린 터너나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같은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당신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음모의 냄새가 솔솔 난다. 뭔가 사악함이 도사리고 있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암수'(暗數)를 알면서도 그래도 넘어갈 것인가. 수천 년을 면면이 이어온 고단위 전술인 '미인계'. 사실 이런 유혹을 이겨내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 "일단 당하고 보자!"는 식의 사회 사건들이 많았다. 무기 구매와 관련된 미인계 사건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난 주 개봉한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팜므 파탈'은 사악한 악녀 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제목에서 이미 선명한 주제의식이 묻어난다.
사실 스릴러는 에로틱과 묘한 연관관계를 갖는다. 손에 땀을 적시는 스릴러의 긴장미는 에로틱을 통해 롤러코스트를 탄다. 생체가 느끼는 '흥분'은 동질성을 갖는 모양이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시작하자마자 벌어지는 '화장실 섹스' 장면이다. 여자들끼리 화급하게 처리하는 몸의 탐닉이다.
미모의 보석 전문털이범 로라(레베카 로메인 스테이모스). 그녀는 칸 영화제에 수천만 달러의 보석을 몸에 걸친 모델이 참석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한다. 그리고 그녀가 레즈비언인 것도 알아낸다. 그녀는 늘씬함(영화 'X맨'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여자초인, 그녀가 바로 스테이모스이다)과 남성적인 이미지로 모델에게 접근한다. 눈빛으로 서로 '같은 과'인 것을 안 그들은 화장실로 직행한다.
로라는 그녀를 화장실 구석으로 몰아넣고, 온몸에 애무 공세를 퍼붓는다. 그리고 몸에 걸친 옷을 벗겨낸다. 그러나 옷이라고는 손바닥만한 것들. 다이아몬드 장신구들이 더 거추장스럽다. 로라는 그 장신구들을 하나 둘 떼어내 바닥에 놓는다. 모델은 그녀의 애무에 제정신을 못 가누는 상태.
마지막으로 가슴을 덮고 있는 큰 다이아몬드 금장식을 벗긴다. 그러나 그 순간 비상벨이 울린다. 벗기면 알람이 울리도록 돼 있었던 것. 경호원들이 뛰어온다. 그러나 이미 보석은 모두 뒤바뀐 뒤다. 화장실에 숨어있던 동료가 미리 준비한 모조품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브라이언 드 팔머는 이 장면을 무척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사방으로 휘감고, 찍어낸 카메라웍은 '훔쳐보기'의 극단을 보여준다. 특히 레즈비언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더욱 섹슈얼해진다. 보석과 여인, 그리고 미모의 도둑. 이 세 가지 요소는 그들의 성행위로 인해 더욱 단단한 흡착력으로 증폭된다.
만일 이 장면에 남성이 끼었다면 어땠을까.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의 피어스 브로스넌처럼 느끼하고, 헐렁해지지 않았을까.
성행위 중에 깔리는 배경음악이 라벨의 '볼레로'이다. 알다시피 볼레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리듬의 멜로디를 사용한 곡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리듬의 강도는 점점 더 세어진다. 마치 수술실의 심장박동처럼 점점 빨라지는 곡이다.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강해지는 것, 그것은 섹스의 단계와 비슷하다. 애무가 강해지면서 모델이 토해내는 뜨거운 입김이 볼레로와 어울려 묘한 흥분을 자아낸다. 더욱 뜨거워지는 모델의 '상태'가 바로 볼레로의 리듬인 것이다.
'미인계'가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약효'가 먹힌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미쳐 느껴보지 못한 사실을 '팜므 파탈'은 역설하고 있다.
에로킹(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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