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의 필요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학교 성교육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드는 TV드라마, 각종 음란사이트 등을 통해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차별적인 '성' 정보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학교 성교육은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채 생리적 현상과 생식기 이론을 알려주고 '순결'만을 강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학교 성교육, 어디쯤 와 있나
교육부에서는 연간 10시간 이상의 성교육을 실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권장사항'에 불과할 뿐, 실제로 연간 10시간 이상의 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담 교사 없이 대부분의 학교에서 보건 교사가 성교육까지 함께 담당하면서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시내 398개 초'중'고교의 성교육 담당자는 보건교사가 310명으로 가장 많고 체육교사 19명, 가정교사 17명 등이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영어나 국어과 교사가 성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한 초등학교 보건 교사는 "아이들이 다치는데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부모들이 많은 탓에 좀처럼 보건실을 비우기가 힘들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30여 개에 달하는 학급을 돌아가며 연간 300여 시간의 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해 아예 포기 상태"라고 털어놨다.
성교육 수업 시간이 따로 배정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업권이 없는 보건교사가 성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담임과의 협의를 거쳐 재량수업이나 연관 교과 수업시간을 활용해야 하는 탓에 어려움이 크다는 것. 이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는 아예 아침 방송이나 비디오 시청 등을 통해 의무 교육 시간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 마라, 안 된다'로만 일관하는 성교육
요즘 아이들의 경우 '어두운 성'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오히려 성에 대해 무지했던 과거보다 잘못된 '성'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노태수 대서초교 보건교사는 "초등학생들에게 이성교제에 대해 연상되는 단어를 써보라고 했더니 '모텔, 잔다' 등을 나열해 깜짝 놀랐다"며 경험담을 털어놨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막연히 '나쁘다'고 이야기하면 오히려 반항심만 커지기 때문에 주로 역할극과 편지 쓰기 등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 노 교사는 "아이들이 자신의 성적 견해와 경험에 대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성교육이 가능해진다"며 "음란물을 봤다, 자위 행위를 한다는 등 아이들의 고백과 질문에 대해 우선 교사와 학부모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명란 아름다운 성교육 연구소 소장도 "여전히 성은 은밀하고 죄스러운 것이며 순결만을 강조하면서 아이들의 성적 충동이나 욕구는 외면하는 식의 교육으로는 학생들의 잘못된 성 개념을 변화시킬 수 없다"며 "아이들이 성적 존재임을 인정하는데서 학교 성교육이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역의 확장이 필요
보편화한 이성교제와 그에 따른 성관계로 여러 가지 성 문제를 경험하는 10대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성 지식뿐만 아니라 피임, 이성교제, 성매매, 성범죄, 양성평등 등 전방위적인 성교육이 실시되야 한다는 것이다.
정명란 소장은 "아이들이 성매매나 성범죄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교육을 해야 한다"며 "자세한 성 정보를 알려주면 아이들이 악용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무조건 감추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왜곡된 정보로 인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성교육이 의무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예산책정이 안 돼 있어 때우기 식의 교육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성교육도 정규 교과목처럼 인력과 예산이 배정돼야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대서초등학교 5학년 4반 학생들이 역할극을 통해 '양성평등'에 대해 배우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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