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은 사방 수백 리에 가장 높은 산이다. 그 정상에 서면 온 세상이 일망무제. 더 올려다 볼 것이라고는 오직 하늘뿐이다. 하늘과 만날 수 있는 통로, 하늘의 뜻을 물으려면 찾지 않을 수 없는 자리, 그것이 팔공산이다.
팔공산은 '우리'가 수천 년을 기대어 살아온 산,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산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산, 영원히 함께할 우리의 산이다. 김유신은 거기서 핍박받던 나라 지킬 힘을 빌었다. 원효는 10년을 구도했다. 신라는 하늘에 올리는 국가적인 제사를 거기서 올렸다. 여러 유학자는 수행처로 삼았다.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 품 안을 찾아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스님이 그 날개 밑을 둥지 삼아 가부좌 틀고 동안거에 용맹정진 중이다. 그리고, 그렇고 그런 우리 중생들의 마음들도 끊임없이 쉼 없이 팔공산을 향하고 있다.
팔공산은 그 뭇 생명들을 그 오랜 시간 보듬어 왔다. 그들의 뜻과 고난을 지켜봐 줬다. 몽골군이 처절히 유린할 때는 민초들과 함께 아파했다. 왜군이 짓밟을 때는 의병을 감싸 안았다. 한국전쟁 때는 최후의 방어선으로서 나라를 지켰다. 공비들로 인해 마을이 화염에 휩싸이고 숱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 처절함, 홍수와 산사태로 마을이 매몰돼 수십 호가 같은 날 제사를 모셔야 하게 됐던 참혹함에도 팔공산은 말없이 그 아픔을 함께했다.
어디가 팔공인가. 늘 우리와 함께 있어 스스로 잘 아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막상 조금 예의 갖춰 자세히 보려 하자 윤곽조차 쉽게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았다. 제대로 파악해 설명해 주는 책 한 권 만나기 어려웠다. 답답해 산 위로 올랐으나 사방이 산 첩첩, 어느 줄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서 맺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헬리콥터를 타 봐도 확연한 건 겨우 한 귀퉁이. 6㎞ 상공에서 찍었다는 고공 사진, 심지어 지구 밖에서 찍었다는 위성사진으로도 팔공산은 제 모습을 다 보여 주지 않았다.
어디가 팔공인가, 그리고 그 품안에 사는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두르는 법 없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경외심에 바탕한 겸허로써, 팔공을 찾아 또 '우리'를 찾아서, 여남은 달을 기약하고 길을 나선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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