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향가 도솔가(兜率歌)에 나오는 두 개의 해는 핼리혜성 현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의 서영교(38) 연구원은 최근 보조사상연구원 제9기 구산장학회 논문발표회에서 '월명사 도솔가와 핼리혜성'이란 주제의 논문에서 이같이 밝히고 "문학작품인 향가는 시대적인 산물인 만큼 도솔가가 창작된 시대의 상황과 천문현상을 객관적으로 검토하지 않고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없다"고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5 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 조를 보면 '경자년(760년) 4월(경덕왕 19년) 초 두 개의 해가 나타나 열흘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자 월명사를 불러 도솔가를 지어 부르니 이변이 사라졌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서 연구원은 여기서 "도솔가에 대한 용의주도한 해석이 국문학계의 학문적 성과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도솔가 창작 당시 신라가 처한 불안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늘에 태양이 둘 나타나는 '이일병현'(二日竝現) 현상에 대해 왕과 반왕당파의 갈등에 따른 나라의 혼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존의 견해를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도솔가가 창작되었을 때 신라의 동맹국인 당(唐)이 안사(安史)의 난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고, 신라에는 일본과 발해가 침략해올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었음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과 발해의 협공 위협으로 전운(戰雲)이 뒤덮고 있던 시기에 '이일병현'이라는 천변은 신라사회를 술렁이게 했을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서 연구원은 '760년 4월에 출현한 혜성'에 대한 신당서의 기록을 제시하며, 이 혜성은 76.03년 마다 지구를 찾아 온 '핼리혜성'이라고 했다.
그는 이와 관련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천문지와 근대 이후 핼리혜성의 궤도계산을 통해 도출된 정확한 근일점 시기를 비교 검토해 도솔가의 창작 모티브가 된 천체(天體)를 살피고 있다.
안사의 난으로 처참한 전쟁터로 변한 당나라의 혼란을 틈탄 일본과 발해의 협공 위협으로 긴장이 고조된 신라에 낮에도 현란한 빛을 발하는 혜성의 출현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고, 통치자는 이 같은 사회적인 불안을 해소시켜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월명사를 불러 재앙을 물리칠 축가(逐歌)를 짓게 하고 산화공양밀의(散花供養密儀)를 열어 미륵부처의 도움으로 앞으로 닥칠 재앙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주장이다.
서 연구원은 "도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신라인 전체가 공유하는 의식의 발현"이라며 "앞으로 문학적·종교적 차원의 연구방법을 넘어 좀더 포괄적인 역사적·천문학적 차원에서의 도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또래女 성매매 시키고, 가혹행위한 10대들…피해자는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