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섬유,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

한국섬유개발연구원

11일 저녁 8시, 대구 서구 중리동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바깥에서 바라본 건물 각 층에 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다.

5층 시험분석팀 내 화학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시험장비마다 '웽웽'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투습도시험기, 스팀프레스, 일광견뢰도 시험기 등 이름도 다양한 시험장비를 다루는 연구원들 손길이 분주하다.

"적잖은 시민들이 섬유가 죽어간다고 합디다.

섬유라는 글자 뒤에는 늘 '사양산업'이라는 글자가 따라다니죠. 입는 옷만 생각한다면 과거보다 대구 섬유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 건 사실입니다.

때문에 저희 연구는 '새로운 섬유', 즉 비의류용 섬유에 대한 도전입니다.

"

연구원들은 이 실험실에서 무궁무진한 분야에서 응용 가능한 '신기한 소재들'이 잇따라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집에도 못가요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복진선(45) 선임연구원. 지난해 하반기 이후 1주일에 한두 번밖에 귀가를 못하는 '강행군' 중이다.

연구원 근처가 집이지만 연구과제가 너무 바빠 '정상적 생활'을 포기한 것.

복 연구원은 현재 발열 섬유를 연구하고 있다.

공식 과제명은 '비의류용 열발산(heat-emitting) 복합 섬유제품 개발.'

"기존 차량용 열선 시트는 크롬선이나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한 탄소섬유사여서, 구부리거나 충격을 주면 전열체가 떨어져 나가 열전달이 불가능해집니다.

변형되지 않고 오랫동안 열을 전해줄 수 있는 섬유를 찾는 것이 과제였죠."

복 연구원은 최근 '집에 못 간 대가'를 얻어냈다.

6개월여 동안 100여 차례가 넘는 실험 끝에 늘어나거나 끊어지지 않는 실인 '케브랄(Keblar)'을 찾아낸 것.

그는 지난 2000년에 자신이 직접 개발한 제직(Leno 장치) 설비를 이용, 실과 실 사이 간격을 넓혀 섬유를 가볍게 해 '발열 섬유'에 내구성은 물론 초경량성까지 덧붙였다.

"앞으로 접착력 테스트, 코팅 방법 개선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원가를 낮추고 무게를 더 가볍게 할 예정입니다.

적용범위요? 셀 수 없이 많죠. 온열매트부터 차량용 시트, 농업용 덮개, 방한복까지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벌써부터 발열섬유의 인기가 대단히 높습니다.

" 그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R&D만이 살길

역내 섬유 관련 전문생산기술연구소는 섬유개발연구원, 염색기술연구소, 패션센터, 봉제기술연구소, 섬유기계연구소 등 5곳.

이들 연구기관은 밀라노프로젝트의 중추기관으로 각종 연구개발은 물론 기업지원사업, 정보화제공사업 등 섬유업계에 대한 기술지원 및 정보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섬유개발연구원 박원호 기획팀장은 "1차 밀라노프로젝트가 연구개발 등을 위한 각종 설비 등 인프라 구축에 치중한 것이 사실"이라며 "2단계부터는 선도업체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R&D투자를 본격화해 반드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했다.

2단계 밀라노프로젝트에서 집중 투자되는 각종 R&D사업들은 업계가 시장성을 먼저 고려해서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연구소가 시설과 인재풀을 활용, 제품 상용화를 이뤄내는 구조. 이 때문에 역내 섬유 전문생산기술연구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R&D의 중요성은 경제적 효과로 나타난다.

2003년 염색기술연구소는 일성기계(주)와 공동으로 4년간의 연구 끝에 직물에 형상기억과 초유연성 기능을 가미한 '액체암모니아 처리기'를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개발했다.

수입가 200억 원이 넘는 고가 장비를 단 40억 원 투자로 개발 성공해 수입대체효과를 실현했다.

현재 많은 중소염색업체들이 염색기술연구소에서 이 기계를 공동 이용 중이다

염색기술연구소 김홍제 기업지원팀장은 "기업들이 연구소를 믿고 적극적으로 이용해야한다"며 "함께 연구한다는 자세를 갖는다면 지역 업계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고 했다.

◇뭉쳐야 산다

올 초 염색기술연구소 사람들이 섬유개발연구원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두 기관 사람들은 "섬유쿼터제가 폐지된 올 해 대구섬유의 생존여부가 달렸다"며 그동안 고유영역을 내세우며 자기 밥그릇만 챙긴 것을 반성하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결성된 가칭 '섬유를 사랑하는 모임'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이 모임은 연구기관, 업체, 대학교수 등 12명의 지역섬유관련 싱크탱크들이 모여 연계사업 등을 고민하는 자리다.

잘만 하면 패션센터가 패션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섬유개발연구원은 소재 개발, 염색기술연구소는 염색기술 개발, 봉제기술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류를 탄생시키는 '원스톱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2단계 밀라노프로젝트 중 26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한 기술지원사업과 섬유패션고급인력양성사업은 섬유개발연구원 주관으로 연구기관들이 함께 사업을 펼친다.

사업은 연구기관 별로 이뤄지지만 함께 고민하겠다는 것이 연구소 관계자들의 생각.

염색기술연구소 류종우 이사는 "앞으로 연구기관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분야별로 모여 서로 의견을 듣는 정기모임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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