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미인도

미인도로 유명한 화가로는 조선시대 후기에 활동한 혜원(蕙園) 신윤복과 근·현대화단의 이당(以堂) 김은호다.

이들은 다양한 인물화는 물론 한복을 입은 여인상을 모델로 삼아 최고경지의 미인도를 유감없이 그려낸 거장들이라 할 수 있다.

김홍도가 '도석'(道釋-도교나 불교를 주제로 한 그림) 인물화의 영향을 받은 인물화를 그려낸 반면 신윤복은 중국적 화풍의 미인도를 나름대로 소화한 인물화를 개발한 셈이다.

즉 중국의 전통화풍인 공필(工筆) 화법을 그의 미인도에 접목하여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당시 윤두서나 강세황 같은 당대의 화가들이 중국과의 교류나 화풍을 따르고 있음을 볼 때 신윤복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화가들이 중국의 화풍을 따르는 반면 신윤복은 그의 풍속도나 인물화에 공필 화법을 도입하고 소화함으로써 한국적이면서 소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그만의 인물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편 근·현대화단의 대표적 인물화가인 김은호는 묘사력을 비롯한 그림의 감각이 가히 천재라 할 수 있다.

물감을 다루는 솜씨 하며 서양화적 소묘력 또한 거의 완벽에 가까웠음은 그의 작품을 보면 짐작이 가고 남는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근대일본화의 대가에게서 인물화 그리는 법을 사사 받음과 일제강점기에 활동을 하였다는 점이 그의 명성에 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종이 위에 밑그림(본)을 그리고 그 위에 천을 씌우고 부드러운 필선과 겹겹이 쌓아올리는 채색기법을 통하여 일본화법을 그대로 수용한 점과 당시 일본정책을 선동하고 돕는 듯한 주제의 작품들은 늘 구설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고려해 평가를 하는지 모른다.

한사람은 조선후기 문예부흥기에 활동하였고 후대에 풍속화가로 크게 평가를 받는가 하면, 또 한사람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의 아픔 때문에 평가절하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신윤복의 간드러지고 에로틱한 분위기의 미인도나 김은호의 하얀 속살이 비친 부드러운 관능의 미인도를 보노라면 그 시대적 상황을 잊을 정도로 푹 빠짐은 물론, 두 대가의 기량과 예술적 감수성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황연화 화가·미술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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