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제의 저자-'목수' 펴낸 신응수씨

"나무는 내 살 중의 살이고 뼈 중의 뼈다. 헛되이 깎아낸 대팻밥이나 잘라낸 나무 토막을 바라보노라면 떨어져 나간 내 살덩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쓰리다. 내가 만든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에도 나는 온 혼을 담아 낸다. 지상에서의 내 짧은 생이 다한 뒤에도 그 기둥과 서까래에 내 생이 살아 남아 있도록…."

나무에 기대어 평생을 살아가는 목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열여섯 살에 목수의 길로 들어선 뒤 우리 고건축을 목숨처럼 보살피며 살아온 도편수 신응수(63)씨가 산문집 '목수'를 출간했다. 중요 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보유자인 신응수씨는 당대 유일의 전통 궁궐 목수로 한국 고건축의 미를 현대에 복원시킨 우리시대 최고의 대목장이다. 서울 숭례문 공사를 비롯해 창경궁,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의 궁궐뿐 아니라 경주 불국사, 안동 하회마을 심원정사, 총리 공관 삼청당,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호암장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형 복원 사업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나무의 생과 나무를 다루는 업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목수의 생이 진솔하게 담겨 있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목수의 생이 나무의 생과 닮은 구석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목수는 나무를 잘라 연장과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 이가 아니라 제 명을 다하고 헛되이 사라져갈 나무를 값있게 살려내는 일을 하는 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신씨는 시를 읽듯 나무를 만난다. "오랜 시간을 안으로 안으로 견디며 자아낸 나이테를 본 적이 있는가. 고요한 수면 위로 번져 나가는 물결처럼 잔잔하게 번져나간 나이테의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비유할 수 있을까. 바지런하게 살아온 사람의 지문처럼 구불구불한 결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나무의 맨몸을 바라보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황홀한가. 목수는 나무 한 그루를 구하는 마음으로 천년을 사는 사람이다. 소나무 한 그루를 찾았으니 오늘을 산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궁궐 목수에게 나무는 세상을 보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깊고 깊은 숲 속에서 마음에 드는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는 일은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인연을 맺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있다지만 나와 인연이 닿는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 하나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쉽던가"라며 인간관계를 성찰하고 있다.

또 궁궐 목수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지런히 사진으로도 기록해 두었다. 벌목, 산판 고사, 먹긋기를 하는 장면 등을 담은 사진은 현장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글로 다하지 못하는 나무의 생과 목수의 생을 전해주고 있다.

"나무는 우리 궁궐의 뼈대다. 천년 궁궐을 짓기 위해서는 천년의 세월을 견디어 낼 수 있는 나무가 필요하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어 낼 만한 나무를 찾지 못하면 천년 궁궐을 지을 수 없다."는 평소의 지론처럼 좋은 소나무를 구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강원도로 내려가는 도편수 신응수. 10여년 전 아예 강원도 정선과 강릉에 40여만 평의 땅을 구입해 우리 건축의 최고 목재인 소나무를 키우며 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장인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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