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력자들의 만찬

로이 스트롱 지음/ 넥서스 펴냄

'낙타의 발, 산 닭의 벼슬, 공작의 혀, 숭어의 간, 플라밍고와 개똥지빠귀의 뇌, 앵무새와 꿩과 공작의 머리.'

기원전 3세기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은 갖가지 색다른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카우치에는 백합, 제비꽃, 히아신스, 수선화를 뿌려 놓았고 손님들의 머리 위에서는 제비꽃잎과 다른 꽃잎들이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비텔리우스 황제도 만만치 않았다. 비텔리우스가 미네르바 여신을 위해 마련해 '로마의 수호여신 미네르바의 방패'라 이름붙인 요리는 창꼬치의 간, 꿩의 뇌, 공작의 뇌, 플라밍고의 혀, 칠성장어의 어백 등으로 만든 독특한 요리였다.

황금빛이 모든 질병을 치유해 준다고 믿던 중세, 1368년 비스콘티 갈레아조 2세는 딸 비올란테의 결혼식을 맞아 주최한 대연회를 온통 황금빛으로 장식했다. 연회는 불을 토해내는 황금색 젖먹이 돼지로 시작해 황금을 입힌 산토끼와 송아지, 잉어가 연이어 나왔다. 1429년 영국 헨리 6세의 대관식 연회는 황금색 마름모로 장식한 '왕의 고기', 황금 표범이 버티고 앉았던 '왕의 커스터드', 황금성에 둘러싸인 멧돼지 머리, '황금 목고리를 두르고 왕관을 쓴 붉은 영양의 하얀 젖', 표범의 머리 하나와 타조 깃털 세 개가 고명처럼 뿌려진 고기 튀김이 있었다.

책 '권력자들의 만찬'은 7만 명을 위해 열흘간 펼쳐졌던 기원 전 바빌로니아의 향연부터 한결 수수해진 20세기의 향연까지 4천 년에 걸친 최상류층 연회의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저자는 음식은 신분과 권력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수단이며 연회는 문명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로마 시대 연회는 문명인과 반문명인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내가 함께 저녁을 먹지 않은 사람은 내게 야만인이다'라는 고대 폼페이 벽화 문구처럼 음식을 나누는 일은 타인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포도주는 반드시 물과 섞어 마셔야 문명인 취급을 받았으며 어른은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기댄 자세로, 젊은이들은 똑바로 앉아 포도주를 마실 정도로 계급의 차이가 확연했다.

중세 봉건사회로 들어서면서 계급 차별은 점점 강화됐다. 연회는 왕과 그 측근들이 봉건적 결속을 다지고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10세기 독일의 공작들은 술을 따르고 식사 시중을 들면서 황제의 하인처럼 행동함으로써 군주를 향한 끝없은 충절을 증명했다. 식탁의 의미는 16세기에 접어들면서 통치자를 찬미하는 수단이 됐다. 군주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중 앞에서 왕이 식사하는 행사가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 유럽 각국에서 관례적으로 펼쳐졌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서 식탁의 의미는 다시 바뀌었다. 과일, 꽃, 눈부신 식기, 윤택한 음식을 차려서 모든 형태의 감각적 쾌락을 구현한 화려한 요리가 다시 등장한 것. 17, 18세기의 연회는 모든 것이 절대주의 왕정의 치밀한 예법에 따라 이뤄졌다. 베르사유 궁에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지켜보는 자리에서 왕이 식사하는 행위는 매일 거행되는 중심의례 중의 하나였다.

프랑스 혁명은 식습관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행위와 욕구의 지형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바스티유 함락 1주년 기념일에 팔레 루아얄의 원형광장에서 국민의회 의원들은 관중 2천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라를 위한 식사'를 했다. 오늘날 연회 장소는 왕궁과 귀족의 성, 부르주아 저택에서 고급식당으로 옮겨갔을 뿐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도 식탁은 여전히 특권의식의 장(場)으로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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