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 재·보궐 선거의 투표일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어떤지 영천에 사는 지인들에게 전화로 물었다.
정치와는 관련이 전혀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이지만 서민들과 자주 맞닿는 직업인 만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바닥 민심을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이들이 전하는 선거 민심은 대략 다음의 두가지로 압축된다
"한나라당에 계속 몰표를 줬는데 달라진 것이 뭐 있나. 이번 재선거도 한나라당이 잘못해서 하는 것 아니냐."
"그래도 한나라당인데…."
말만으로는 지난해 17대 총선 때와 진배 없다.
그러나 말의 톤은 크게 차이가 났다.
지난해 총선 때는 열린우리당을 편드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감이 있다.
대조적으로 한나라당의 편은 다소 주눅마저 든 듯하다.
■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영천이 4·30 재·보궐 선거의 최고 관심지역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한나라당의 간판만 달면 무조건 당선이라고 여겨왔는데 최근의 여론조사들을 보면 열린우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니 전국적인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게다가 후보의 지지도는 물론 정당별 지지도에서도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같거나 오히려 앞서기까지 하니…. 특정 지역의 이야기지만 열린우리당은 물론 예전의 민주당도 정당 지지도에서는 이만큼 된 적이 없었다.
이를 두고 열린우리당의 경북지역 재·보선 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유시민 의원은 21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라고까지 했다.
'그깟 일로 기적이라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간의 대구·경북에서의 선거를 보면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얼떨결에 로또복권이라도 당선된 듯하다.
지난해 총선 때 대구·경북의 한나라당 후보들은 불법 시비에 휘말릴까 몸조심하며 선거운동조차 제대로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안간힘을 썼지만 '지역 정서' 앞에는 어떤 논리도 먹혀들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번에 영천은 열린우리당 스스로 큰 기대도 않고 공천했는데 '막강'한 한나라당 간판을 극복할 가능성이 커 보이니 놀랄 일이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도 아니다.
지난해말 현재 영천의 인구는 11만여 명. 30년 전인 74년의 근 절반으로 떨어졌다.
최근 몇 년 새 자영업자의 30%가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줄곧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줬는데 사람도 돈도 떠나고 갈수록 쇠락해지니, 게다가 선거마저 한나라당 당선자의 부정선거로 인해 치러지게 되니 반(反) 한나라당 정서가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다가서니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아당기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투표일이 아직 일주일 남짓 남아 있어 절대 속단할 상황은 아니다.
후보나 정당 관계자의 말 실수나 행동 잘못 하나가 전체 판세를 한꺼번에 뒤흔들 수도 있는 것이 선거다.
여기에다 지난해 총선만큼의 위력을 아직은 발휘하지 못하지만 언제 또 다시 터질지 모르는 '박풍(朴風)'도 있는 만큼 막판까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모두 전력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영천 국회의원 재선거는 향후 대구·경북의 정치 구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올 가능성이 크다.
■ '혹시나' '역시나'
현재까지의 영천의 국회의원 재선거 판세를 보면 '특정 정당에 쏠리는 정서'보다는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대구·경북 전역으로 확산되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번 선거가 대통령 선거나 총선거와는 다른 보궐선거인 만큼 이를 근거로 정치 기류를 내다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겠다.
하지만 대구·경북은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 변화에 대한 욕구 역시 크다.
현실에 대한 불만은 예전에는 정권으로부터의 소외감과 맞물려 '지역 정서'로 연결됐지만, 이제는 그동안 몰표를 주었던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으로도 점차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저런 것들이 다음 선거때는 임계점에 달해 터져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싸움은 붙이고 흥정은 말려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당사자는 복장이 터지겠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더욱 재미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경쟁도 마찬가지이다.
저마다 텃밭이라고 여기는 곳들의 '지역 정서'에 매달리지 않고, 여당과 야당이 진정 시민들을 위한 노력을 내세워 다툰다면 지역을 위해, 그리고 국가 전체를 위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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