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오락실은 보통 현금을 만지는 자영업자들이 찾는다. 명퇴나 정년퇴직 후 소일거리를 찾던 50, 60대 남성들도 피치 못해(?) 오락실로 향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한 목 좋은 오락실에는 '대학 교수'로 알려진 40대 남자가 '꾼'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 교수는 매일 수천만 원씩 가져와 쇼핑백 가득 상품권을 채울 정도로 도박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한 종업원은 "남부럽지 않은 지위와 직업을 가진 이들도 오락실에 많이 드나든다"고 말했다.
적게는 하루 평균 20만 원에서 많게는 70만 원씩 잃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운 좋은 경우는 상품권이라도 만질 수 있지만, 환전한 돈을 다시 기계에 넣는 일만 반복하다 보면 결국 빈털터리가 된다. 도박중독자들이 으레 그렇듯 잃은 돈을 찾기 위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사채 쓰고, 집을 저당잡히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오락실에서 뭉칫돈을 탕진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북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이모(49)씨는 어제 하루 매상 30만 원을 오락실에서 다 날렸다. 1년여 전부터 성인오락실 출'퇴근(?)을 했지만 쉽사리 끊기 힘들다고 한숨지었다. 자신의 뭉칫돈을 집어삼킨 기계에 딴 사람이 앉아있을 때 '용가리'(대박을 뜻하는 은어)가 터질까봐 늘 노심초사다. 단골 오락실엔 지정석이 있을 정도. 이씨 자신도 '사람이 기계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느새 가게를 나설 때면 현금을 챙겨 나오게 된다고 했다.
"수천만 원은 족히 잃었을 겁니다. 호기심에 한두 번 찾기 시작했는데 오기가 생기더군요. 처음에는 스트레스 좀 풀어볼 생각이었는데 이젠 중독이 됐습니다."
가족이 알면 난리 날까봐 주로 '사우나 간다'는 핑계를 대고 나온다. 심지어 아내가 낮잠을 자는 틈에 나온 경우도 있고, 아이들과 놀아주겠다고 거짓말한 뒤 용돈 몇 푼 쥐어주고 나서 오락실로 향한 적도 있다.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들은 대부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어제는 어디가 많이 터졌다더라', '이번에는 그 집에서 분명 터진다'며 그룹을 지어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한 번 간 곳은 최소한 일주일은 가보는 게 속칭 '꾼'들의 정석. 승률이 조작된 느낌이 들면 여지없이 옮긴다.
30년 오락실 경력의 최모(63)씨. 그는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얻은 퇴직금과 은행예금을 조금씩 인출해 일일도박에 나선다. 경주, 경산 등지로 원정도 나간다고 했다.
"보통 70만 원 정도 들고 나옵니다. 아침에 사우나 갔다가 오락실에서 밥 시켜먹고 소일하는 거죠. 따는 날도 있고 잃는 날도 있는데 요즘엔 영 신통치 않습니다."
최씨는 혼자 살고 있다. 부인과는 12년 전 이혼하고 두 딸은 시집을 보냈다. 도박과 함께 붙어다니는 술, 담배로 건강이 많이 나빠졌지만 병원 갈 돈은 없어도 오락실 갈 돈은 있다고 했다. 최씨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오늘 보니 기계를 잠갔네요. 한두 달 좀 터지게 만들어 놓으면 손님이 모이죠. 단골 좀 만들었다 싶으면 슬쩍 잠급니다. 아마 소문이 돌아 내일부터 이곳 장사 안될 겁니다."
최씨는 그날 오락실의 분위기만으로도 하루 승률을 점칠 수 있는 베테랑이다. 벌어들인 돈을 족족 기계에 꽂았으니 여태 탕진한 돈만 수억 원대는 될 것이라고 했다. 넥타이에 양복을 점잖게 입고 있는 최씨는 상품권 교환소에서 환전한 뒤 오늘 하루 마지막 베팅을 위해 오락실로 뛰어갔다.
오락실 근처에서 주차업무를 맡고 있는 한 50대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란 거 다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빠져듭니다. 한탕이란 게 뭔지…."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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