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로 읽는 신상품 백과사전

김정수 엮음/간디서원 펴냄

새로운 상품이 사람들에게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1년도 채 안돼 사라진다. 오늘날 세계를 제패한 아이디어 상품들 가운데 출시 당시 거센 반감과 비난의 표적이 되어 자취를 감추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경우도 많다.

비키니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부족한 물자 때문에 천조각을 아끼려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비키니'라는 용어는 1945년 원자폭탄 실험을 했던 북태평양 마셜제도의 작은 섬 이름에서 비롯됐다. 비키니가 주는 충격적인 인상이 원폭 실험의 강도에 버금간다고 해서 붙여졌다. 비키니가 처음 나왔을 당시 반응은 '여자의 모든 것을 거의 다 보여주는 수영복', '여자가 구속되지 않고 입을 수 있는 가장 천박한 수영복' 등 경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옷을 처음 선보인 파리의 술집 모델 베르나르디니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고, 1950년대 옷장 속에 깊이 숨겨 두었던 비키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1960년대 해변까지 진출해 결국 수영복의 대명사가 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으로 건너간 이사도라 던컨은 튀튀와 토슈즈로 대표되는 기존 발레리나 의상과 코르셋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 그녀는 맨발에 부드럽고 얇은 가운을 입고 춤을 춰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이른바 '댄스혁명'을 불러일으켰다.

멕시코 열대 정글에서 황체호르몬을 함유하고 있는 '얌'이란 나무에서 추출된 피임약의 출현은 많은 부부들이나 여성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러나 난교를 조장하고 성도덕의 문란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웠다. 영국정부는 독신녀들에게는 판매를 금지했고 미혼 여성들은 약혼 반지를 제시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1965년 유엔총회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인공적인 방법으로 피임하는 것은 성문란을 야기시킬 뿐 아니라 하늘의 뜻에도 어긋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피임약은 수많은 여성들을 임신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1970년 화학자 스펜서 실버는 접착제에 대한 연구를 하던 3M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강력한 접착 물질을 찾는 것이었는데 사소한 실수로 접착력이 강하기는커녕 어떤 곳에도 오래 붙어 있으려 하지 않는 엉뚱한 것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두 가지 장점을 갖고 있었다. 떼어냈다가 다시 붙일 수 있으며 떼어내도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이 상품은 10년 동안 다른 용도를 찾지 못한 채 사장되어 있었다. 그러다 스펜서 실버의 친구인 아서 프라이가 책갈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자 1981년 3M은 작은 메모지 한쪽 가장자리에 스펜스 실버가 발명한 물질을 바른 후 '포스트 잇'이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하게 됐다.

'문화로 읽는 신상품 백과사전'은 생리대, 고무장갑, 세탁기,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 도서상품권, 혈액은행 등 140여 가지 다양한 상품이 어떻게 탄생했고, 그 시대와 사회의 숨겨진 문화코드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생겨난 산물이었거나 출시된 지 10년, 100년이 넘게 외면되던 상품이 어느 날 갑자기 인기몰이를 하게 된 사례, 창의와 모험으로 소비심리를 이끌어낸 개발자의 튀는 철학'신념 등 재미있는 뒷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짧아지는 치마길이가 자연재해를 몰고 왔다고 비난받은 미니스커트, 성희롱의 가능성을 크게 줄인 타이즈, 여주인공을 위해 영화제작자가 고심 끝에 특별제작한 모조 속눈썹, 할아버지의 애정 어린 노력으로 탄생한 일회용 기저귀 팸퍼스, 필리핀에서 무기로 사용되다 놀이로 계승된 요요, 루스벨트 대통령이 살려준 새끼 곰을 형상화한 테디 베어 인형 등이 눈길을 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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