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평지 살던 사과, 山으로 北으로

지난 10일 의성군 가음면 현리. 비포장길을 차로 10분 달려 서남산 계곡을 따라 해발 400m 지점에 오르자 8천여 평의 사과 재배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2001년부터 개간을 시작해 지난해 첫 수확을 거둔 곳이다.

사과 농가는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해발 250~400m까지 취재팀이 발견한 농가만 10여 곳. 모두 지난 5년 사이에 이사했고, 급경사의 산비탈을 계단식으로 개간했다.

농가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이유는 단 하나, 지구 온난화 때문.

농가들에 따르면 사과는 30℃ 이상 고온이 수십일 지속되면 성장을 멈춘다.

이때부터는 종으로 크지 않고 횡으로만 퍼져 뚱뚱하고 못생긴 '납작' 사과가 되기 일쑤. 이곳에서 10km나 떨어진 금성면에서 '출퇴근' 경작을 하는 조용일(45)씨는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산으로 이동한 것"이라며 "의성의 평지 사과는 갈수록 줄 것"이라고 했다.

조씨는 지난해 이곳에서 3천 평당 6천만~7천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같은 면적의 금성면 평지는 2천500만 원에 그쳤다.

고온에선 병해충도 더 잘 생겨 산에선 연간 7회만 농약을 쓰지만 평지에선 11~13회가 기본이다.

그는 "7, 8년 전부터 고온 피해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며 "산으로 가고 싶어도 마땅한 자리가 없어 그냥 평지에 머무르는 농가도 많다"고 했다.

조씨의 말처럼 평지에서는 사과 농사를 줄줄이 포기하고 있었다.

금성면 산운리 김병호(48)씨. 증조부가 100년 전부터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2만 평 김씨 땅엔 한 그루의 사과 나무도 남지 않았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사과 농사 포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가 나 어쩔 수 없었다.

고온 피해가 속출하면서 5만 원짜리 사과 한 상자 값이 3만 원 선으로 뚝 떨어진 것. 10년 전부터 포도, 양파 농사로 전업해 지난해에는 마지막 남은 3천 평까지 마늘밭으로 바꿨다.

의성군농업기술센터 오상진 지도사는 "이웃 일본에서는 30℃ 이상 기온이 30일 이상 지속되면 사과 생육에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경산, 영천, 대구 사과는 60, 70년대를 기점으로 의성, 청송, 영주로 이동했고 지금은 충청, 강원 지역으로 북상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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