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대금연주자 이수준씨

대금주자 이수준(38·대구교육대 강사)씨는 흔한 말로 '튀는' 사람이다. 덥수룩한 수염에서 풍기는 첫 인상과 남다른 이력, 그의 음악 행보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

그는 삭막한 도시속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청정 지대를 꿈꾸고 있다. 수염이 자라는 것도 자연 현상이므로 내버려 둔다는 그는 일년에 세번만 수염을 깎는다. 그에겐 그 흔한 운전면허증이 없다. 10년 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운전면허를 가질 필요성이 없었다. 최근까지 휴대전화도 없었다. 본인은 괜찮은데 주변 사람이 더 답답해 하는 바람에 지인이 선물한 휴대전화를 마지 못해 갖고 다닌다.

그는 평소 '갖는 것'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성격 좋은 사람이지만 음악 만큼은 욕심이 많다. 대금뿐 아니라 혼자 익힌 장고, 피아노 실력도 이름대로 수준급이고, 직접 만든 곡으로 연주회까지 열고 있다. 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대안성당 성가대 지휘와 창단 20여년을 맞은 율선국악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명상음악회도 열고 있다.

1999년부터 여러 연주회를 함께하며 호흡을 맞춰 온 피아니스트 정윤숙(31)씨는 "허물 없고 편안하게 사람을 대해주지만 음악만 접하면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나온다"며 "집에 가면 초등학교때부터 만들어온 다양한 악기 편성에 맞춘 미발표 창작곡이 많다"고 귀뜸한다.

소리를 좋아한 그는 어릴때부터 작곡을 공부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피아노를 치며 곡을 만들어 녹음까지 하는 열정을 보였으나 주변의 만류로 작곡가의 꿈을 접었다. 대신 그는 고교 시절 이인수(전 대구국악협회장) 대구교육대 교수를 만나면서 대금 연주자의 길로 접어 들었다.

"심금을 울리는 대금 소리에 심취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진학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부모님이 원서를 접수시키는 바람에 다녔습니다." 경북대를 졸업한 뒤 대구시립국악단에 몸을 담았지만 천성적으로 단체 생활이 몸에 맞지 않아 몇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이후 그는 어릴때 꿈이었던 작곡에 몰두했다. 영화음악의 매력에 빠져 데모 테잎을 만들어 음반 회사를 쫓아 다닌적도 있다. 그러다 우리 악기, 우리 음악을 널리 알리고 서양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우리 전통 음악에 관심 가져 줄 것을 기대하면서 1999년 '대금과 피아노 첫번째 이야기' 공연을 가졌다. 대금과 피아노 작품, 대금·피리·해금과 피아노 작품 등 직접 쓴 8곡이 선보였다. 올해 5월에는 '대금과 피아노 두번째 이야기' 공연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었다. 이번에도 대금과 피아노 작품, 두 대의 25현 가야금과 대금 작품 등 창작곡을 선보였다.

자연의 미학을 추구하는 그의 삶이 음악 세계에 고스란히 녹아 들면서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그의 연주를 접한 후 곡에 어울리는 부제를 붙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대금과 피아노 작품 11번-해질녘의 저녘향기'를 포함, 6곡에 부제가 붙었다.

"왜 작곡을 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우리 음악의 밑천은 일천합니다. 현악4중주의 경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좋은 곡을 남겨 두었기 때문에 레퍼토리 걱정 안하고 연주할 수 있지만 국악은 그렇지 못합니다. 저 대신 다른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수많은 작곡가들 중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인물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바라는 것이 있다면 누군가 내 곡을 기억해주고 연주해주는 것 뿐이며 이를 위해 기회가 되면 음반으로 곡을 남기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해 놓은 일도 없는데 벌써 자기 얼굴을 책임져야 할 40대가 코 앞이라 걱정이라는 그는 "여건만 되면 조용한 곳에서 곡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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