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좀 쉽게 쉽게 가자

우리는 병역문제에 관한 한 '특이한 정서'를 갖고 있다. 대통령선거에서 아들의 병역면제의혹이 제기되면서 2번이나 낙선한 이회창 후보의 경우가 그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 후보의 입장에서 보면 97년 대선(大選)에선 DJ에게 이른바 병풍(兵風)에 휘말려 낙선한데 이어 2002년 재도전에서도 역시 '김대업의 병풍' 덫에 걸려 노무현 대통령에게 고배를 들고 말았다. 최근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김대업의 병풍'은 '허풍'이었음이 드러났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가 버렸다. 이 후보의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만 이미 역사의 뒤안길이 돼 버렸다. 대선의 당락을 결정할 만큼 병역문제가 국민의 특이한 정서가 된 배경엔 아마도 '6'25전쟁'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들이닥친 전쟁이 '소년병'에서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길거리에서 잡혀 사격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그야말로 밀려드는 '인민군'의 '총알받이'로 숨져간 이들이 무려 수백만명에 이른다. 이때부터 '입대는 곧 죽음'이라는 공포의 공식이 성립되면서 지금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자식이 군에 간다면 부모 가슴은 덜컥 내려 앉기부터 한다. 이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권력층에 줄을 대 빠지는 이른바 '빽'이외엔 묘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죽어가면서도 '빽'이라고 절규했다지 않는가. 권력있고 돈있는 유복한 자녀들은 빠지고 힘없고 가난한자들의 몫이 군 입대요, 줄을 댄 위력에 따라 최전방에서 후방순서로 자리매김해온 그 한(恨)의 발로가 바로 특이한 '병역정서'일 것이다.

'무전입대(無錢入隊)'유권면제(有權免除)'의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정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생떼같은 자식 8명이 한꺼번에, 그것도 바로 동료 병사의 수류탄과 총에 맞아 몰죽음했으니 그 부모들의 억하심정은 무슨 말로도 표현될 수가 없고, 딱히 위로 해줄 방법도 없다. 이 충격은 비단 그 당사자들뿐 아니라 이 땅의 아들을 가진 부모들이라면 모두가 가슴부터 덜컥했을 것이다. 의당 그 원망은 '문제의 병사'에서 부대의 지휘관으로 올라가면서 종국적으론 현 정부쪽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그 종착점이 바로 윤광웅 국방장관이고 당연히 물러날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 책임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군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미안하지만 안된다'라고 버티고 있다. 겉으론 해임건의안을 내놓은 한나라당과의 대치이자 정국주도권 다툼이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협상'을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상식을 뒤엎는 '대통령의 결단'에 전국민이 의아해 할 건 당연한 이치이다.

도대체 그 국방개혁의 내용이 뭐기에 대통령이 이런 협상을 하자는 건지 우선 납득이 안될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병역문제에 특이한 정서를 가진 국민인 것을 안다면 우선 그 개혁의 실체부터 밝히고 왜 그게 마치 국보나 되듯 윤 장관 아니고선 안된다는 건지 충분한 설명부터 해야한다. 딱히 장관을 갈아치우는 게 문제해결의 능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창군이래 드문 참사를 막지 못한 정부의 사죄의 뜻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하고 그 구현이 '장관사임'이다. 어찌보면 군 개혁 하라고 장관에 앉혀놓은 지 1년이 되도록 도대체 뭘 했기에 이런 '반개혁적 참변'이 났느냐면서 오히려 더 강한 문책론을 제기할수도 있는 상황이다.

여당도 '대통령의 설득'에 무조건 따라야하는 건지 심사숙고 해야 할 중요한 계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잖아도 지금 국정은 여러 곳에서 난마처럼 꼬여 있고 정부'여당간의 파열음까지 나와 민심이 돌아선 마당이다. 이 문제는 가부간 결론이 나겠지만 그 후폭풍은 쉽게 가라 앉지 않을 것이다. '정국경색'부터가 걱정이다. 여'야가 손발을 맞춰 지혜를 짜내도 해결할까 말까할 난제들이 너무 많다. 이런 와중에 '정국경색'은 국정 혼란을 초래할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 전개이다. 군 개혁 이라는 게 금방 그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굳이 '윤광웅'인가 하는 문제도 인재 빈곤을 대통령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인재등용이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참으로 난감한 시점에서 대통령은 상식을 뒤엎는 '판'을 벌여 놓은 것이다. 왜 '참여정부'는 위기의 고비마다 이런 '희안한 돌파구'를 번번이 고안해내는지 참으로 난해하다. 지금 고달픈 삶을 사는 국민은 정부가 좀더 시원 시원하고 쉽게 쉽게 난국을 헤쳐나가길 바란다. 이런 마당에 '이겨도 지는 게임'을 왜 자청하고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朴昌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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