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독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잘 먹으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된다. 독을 더 강한 독으로 다스리는 것이 치료다. 그래서 적당하면 약이지만 과하면 독이라고 한다. 약은 좋다고 많이 먹지 말며 나눠 먹지 말라고 경계한다. 소화제도 부작용이 있고 조제약은 자신의 병에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원에 새로 입원하는 노인 환자의 20% 이상이 약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약이 곧 독이기에 약물 중독은 그 무엇보다 무서운 병이 된다.
◇ 모든 약물은 독에서 비롯되고 약과 독의 뿌리가 같기에 독성이 없는 약물은 없다고 한다. 인류를 세균에서 해방시킨 페니실린도 푸른 곰팡이에서 탄생했다. 뱀이나 전갈, 박테리아에서 유래된 독으로 탄생한 치료약도 숱하다. 최근 얼굴의 주름살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보툴리늄 톡신은 신경독성 물질로 식중독의 원인이 되는 독소다. 진해 거담제를 환각 효과가 있는 마약으로 사용하는 것도 약과 독이 다르지 않다는 증거다.
◇ 광주과학기술연구원은 대구 서울 부산 등 전국 5대 도시의 하수종말처리장 수질을 분석한 결과 수중 생태계에 유해한 의약 성분이 엄청나게 높게 검출됐다고 밝혔다. 콜레스테롤 저하제와 소염 해열 진통제 등의 의약 성분은 외국에 비해 2~8배 이상 높다고 했다. 많이 먹는 탓에 대소변으로 배출되는 양도 많겠지만 약국이나 가정에서 버려지는 약이 많은 탓으로 분석했다. 매년 수백억 규모의 약이 버려진다고 한다.
◇ 버려진 약을 보면 물 속은 거대 약품 창고다. 서로 다른 약 성분이 마구잡이로 섞인다. 그 결과 독성은 시너지 현상을 일으킨다. 버려진 약의 잔류물은 하수 처리 공정을 거치더라도 일부는 분해되지 않은 채 생태계로 돌아간다. 의약 잔류물의 유해 여부는 논란이 되지만, 약이 독임을 감안할 때 위험천만 상태다. 버려진 약품의 환경 영향 평가를 실시하는 한편 의약품 폐기에 관한 관리 규정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 약과 독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대하는 자세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독은 가까이 가기만 해도 무서운 존재지만 약을 두렵게 여기지는 않는다. 어린아이조차 쉽게 먹고 아무 생각 없이 버린다. 약을 마구잡이로 버린 결과는 끔찍할 수 있다. 산과 들, 강과 호수가 약물 중독이라도 걸린다면 누가 어떤 약으로 치료해 줄 수 있을까.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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