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장기, 댄스, 낚시, 골프…. 제 또래들이 하는 취미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요. 어렵게 살고 있는 이웃을 도울 수 있는데 청소하는 일이 뭐 대숩니까?"
19일 오후 3시쯤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만난 최형복(68)씨는 세찬 빗줄기 속에서 주민들이 버린 박스를 옮기고 있었다. 재활용쓰레기 수거차량이 들어오자 냅다 뛰어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돗가에서 씻기 시작했다. 이 아파트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지 벌써 5년 째.
"7년 전 정년퇴임한 뒤 제 남은 인생을 고민했지요. 무작정 대구평강교회 무료급식소를 찾아가 주방에서 식판을 옮겼어요. 허리가 아파서 남구에 있는 한 복지관에서 홀몸노인의 고민을 들어주는 전화상담원으로 일했습니다. 노후생활이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최씨의 노후설계는 '이웃사랑'이었다. 그는 주말마다 앞산을 오르며 쓰레기를 주웠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떠난 동료 교사들은 취미생활을 하며 편안한 노후를 즐겼지만 자신은 아파트 미화원으로 다시 '샐러리맨'이 됐다. '사랑'에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 아내도 교사였기 때문에 둘이 받는 연금으로 먹고 살기는 충분해요. 하루 7시간씩 일하고 월급으로 50만 원 받습니다. 버스 두 번씩 갈아타는 교통비만 빼고 나머지는 쌀을 사서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나눠주지요."
그의 이웃사랑은 모두 익명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동사무소 직원, 병원 호스피스 등을 통해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또 설, 추석, 크리스마스에는 인근 고아원으로 먹을거리를 보낸다.
거기다 동산의료원, 영대병원에 자신의 '신장기증', '시신기증'도 약속해 놓았다.
"청소부가 된다고 하니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체면이 있지 무슨 청소일이냐며…." 그렇지만 지금은 자식도, 아내도 최씨의 이웃사랑의 협력자가 됐다. 그는 "천식, 폐질환, 위염으로 고생했는데 이젠 아파트 5층을 뛰어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초교 교사 퇴직 후 아파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받은 월급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최형복씨가 재활용품을 모으며 밝게 웃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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