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꼭두서니

그날따라 창 밖엔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 옆 자리에 앉기까지 나는 배호의 노래인 '돌아가는 삼각지'를 입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즐겨 부르시던 노래라 어린시절부터 내 귀에 익은 이 노래를 나는 좋아한다.

궂은 비 오는 삼각지, 그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워하며 노래에 푹 빠져 있는 나를 향해 그녀가 던진 첫 질문은 '꼭두서니를 아시나요' 였다. 삼각지를 반쯤 돌아나온 나는 멍하니 그녀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둘 나이를 더하면서 사람은 자기 나름의 빛깔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꼭두서니는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지금은 인조물감에 밀려서 거의 쓰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뿌리를 끓인 물로 천이나 나무를 붉은색 또는 노란색으로 염색하기도 했지요. 산이나 들의 숲속에서 낮은 나무에 달라붙어 무리지어 자라며 약제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꼭두서니를 이용하여 옷의 빛깔을 내는 사람들이 있지요. 저는 이 꼭두서니를 이용하여 빛깔을 내듯 내 인생에 알맞은 나의 향기와 빛깔을 갖고 싶다는 의도에서 별호를 꼭두서니로 지어 본 것이랍니다."

사실 나는 꼭두서니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내 곁에 앉아 자신의 별호를 설명할 때까지 꼭두서니는 꼭두각시의 또 다른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방학을 이용해 재직자 직무연수의 하나인 '자기성장프로그램'의 연수가 끝난 지는 이미 달포를 넘겼지만 나는 그날의 그녀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 알맞은 향기와 빛깔을 빚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꼭두서니를 매만지고 있을까. 스스로의 향기와 빛깔을 내기도 어렵거니와 낼 수도 없는 인생이고 보니 그녀가 던진 그 말 한마디가 왜 이다지도 그리울까.

시나브로 귀뚜라미 소리 요란한 이 계절, 나름의 빛깔과 향기가 더욱 더 그리운 인생, 아마도 내 빛깔과 내 향기를 위해서는 돌아가는 삼각지를 아직은 더 돌고 더 돌아야만 할 것 같다.

백천봉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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