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 '달의 제단' 주부 독서토론회

'전통-현대의 불화'끝내 비극으로…

지난달 27일 오전 대구서부도서관에서는 책 읽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은 아줌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구지역 공공도서관 연합 주부 독서토론회. 이날의 주제 도서는 '파이 이야기'와 '달의 제단' 등 3권. 그 중 안동 종갓집을 배경으로 전통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그린 '달의 제단'을 읽은 10여 명의 주부들로부터 종가와 전통, 가부장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여성에게 바치는 제물

'달의 제단'은 '내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작가 심윤경이 두 번째로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종손인 상룡이 완고한 할아버지에 맞서 집안의 종이나 다름없는 장애자 정실과 결혼하려다 결국 효계당에 불이 붙으며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여기에 상룡의 10대조 할머니인 '소산할매'가 딸을 낳아 대를 잇지 못한 종부의 비극적 인생사를 '언간'으로 전한 또 다른 이야기가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날 모인 주부 독서 토론회 회원들은 가장 먼저 '달의 제단'이라는 제목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주부들은 효계당이 불타면서 완고한 할아버지가 끝내 상룡이와 함께 탈출하기를 거부하고 화염 속에 남아 재로 변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가부장제에 희생당한 여성들에게 바치는 '소멸 의식'으로 해석했다. 또 일부는 일반적으로 '달'이 '여성'을 상징한다는 데 주목하고, 주인공인 상룡이를 그 동안 많은 여성들을 억압해 온 가부장제의 누적된 죄업을 대신 받는 희생양(제물)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 화해하지 못하는 전통과 현대

서안 조씨 가문의 17대손인 상룡. 하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에, 매사에 조심성 많고, 미술교사인 어머니의 피를 받아 법관보다는 환쟁이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할아버지의 경멸하는 듯한 날카로운 눈초리에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더욱 안으로만 기어드는 인물이다.

이런 할아버지와 상룡의 관계는 상룡이 정실과의 결혼을 선언하면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할아버지는 결코 종부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정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굳게 버티고, 그 와중에 10대 조모인 안동 김씨가 남긴 10여 통의 언간의 내용을 듣고 격분한 할아버지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언간을 불태우면서 효계당이 일순간 불 속에 휩싸여 버리는 것.

이런 결말에 대해 토론 참석자들은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혜정 씨는 "결국 할아버지로 대변되는 전통과 상룡으로 그려진 현실주의는 화해하지 못하고 화형당하고 말았다"며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주장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히 잦은 제사와 집안일에 억눌린 삶을 살았던 40, 50대 주부들이었지만 이들은 의외로 전통을 고수하려는 할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고 동정심마저 드러냈다. 한 주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사라는 의식으로 대변되는 전통의 소중함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며 "요즘 젊은 세대는 무조건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만 따지지만 전통은 단절돼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성애 씨도 "개인적으로 전통적 문화와 가깝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너무 서구적인 것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이제는 옛것의 아름다움을 강조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남아선호사상

주부들의 이야기는 주인공의 10대 조모인 '소산할매'가 남긴 언간에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자연스레 연결됐다. 현대인들은 해독조차 어려운 고풍스러운 한문투의 언간에 담긴 내용은 조씨 집안의 대를 잇는 과정이 얼마나 모호하고 비열했는지를 그려내고 있었다.

언간은 소산할매가 자신의 할머니인 한마님께 전한 편짓글로 시집와 낳은 아들이 돌림병으로 죽고, 남편마저 병을 얻어 세상을 뜨면서 운 좋게 아이 한 명을 더 잉태했으나 결국 낳은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아버지가 태아를 짓밟아 죽이고 소산할매에게까지 자진할 것을 강요했다는 내용.

하지만 주부들은 소산할매의 비극적인 삶에 같은 여성으로서의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도 남아선호사상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아직은 우리 사회 구조나 관념상 아들이 중시된다는 사실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것. 주부들은 "딸을 키우는 엄마이면서도 대를 잇고 의지가 될 자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아들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내 딸이 이런 남아선호사상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데 머릿속에 뿌리박힌 관념을 어찌할 수 없어 답답했다"고 소설을 읽은 소감을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지난달 27일 대구 서부도서관에서 열린 공공도서관 연합 주부 독서 토론회에 참가한 회원들이 '달의 제단'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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