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통계라는 거짓말

인터넷에서 '통계'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영국 정치가 디즈레일리의 유명한 독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세상에는 3가지 형태의 거짓말이 있는데 그냥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유독 교육 분야의 통계와 관련된 갑론을박들에 이 독설이 많이 인용된다는 사실이다. 통계라면 학문적인 분야나 경제 지표 같은 데서 훨씬 더 흔하게 접할 수 있는데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 교육 분야에서 자주 논쟁거리를 만든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살이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조차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면서도 무슨 조사 자료라거나 분석 결과, 통계 수치라면 곧잘 믿어버린다. 수치가 지닌 객관성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겠지만, 현실에서 통계는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우리를 배신한다.

그 배신은 실수나 착각으로 인한 오류가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통계를 조작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적극적 의미의 원인도 크게 작용한다. 디즈레일리가 말한 통계를 이용한 거짓말은 후자를 지적하는 것이겠지만, 통계라는 마술에 대한 방비 능력이 취약해진 오늘날의 사람들에겐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자료, 특히 평소 접하기 힘든 통계 자료들을 동반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통계 수치라는 위압적인 자료로 무장했음에도 그다지 신뢰가 생기지 않는 게 현실이다. 현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주고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하는 힘을 가진 통계가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16개 시·도의 '고교 사설 모의고사 지침 위반 현황'이란 자료는 교육계에 설득력은커녕 비아냥만 불러왔다. 전국 시·도 가운데 대구의 고교들이 사설 모의고사를 가장 많이 치렀다는 사실은 유별난(?) 대구 교육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수긍이 가지만 광주, 울산, 충남·북, 제주 등지에는 한 학교도 없다는 수치는 통계 자료 자체를 믿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불법 찬조금 모금 적발액 자료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1년 동안 적발된 모금액이 19억여 원이었는데 올해는 5월까지만 23억여 원이 적발됐다고 하니 놀랍긴 하지만, 대구와 인천 등지에서는 단 한 푼도 적발되지 않았다니 학부모들로선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밖에 학교 폭력 현황, 사교육비 지출 실태 등의 통계 역시 놀랍지만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뒤따르는 건 다를 바 없다.

통계를 불신하게 만드는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렵사리 통계 자료를 만든 목적이 그 불신으로 인해 가려진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울산의 거짓이 금세 드러난 사설 모의고사 관련 통계처럼 변명거리나 만들고 선악에 대한 판단마저 무의미하게 만든다면 통계는 해악이 될 뿐이다.

통계의 해석도 마찬가지다. 드러난 문제점에만 집착하다 보면 소도 외양간도 다 잃게 된다. 불법 찬조금 모금을 왜 적발하지 못했냐거나, 허위보고한 게 아니냐는 지적보다는 불법 찬조금이 생기는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일이 훨씬 더 설득력을 갖는다는 사실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일이다. 통계는 현상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찾아내는 도구로 활용돼야지, 그 자체로 주장이나 비판의 도구가 돼서는 거짓말이란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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