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홀몸노인 어르신 봉사단

6·25 전쟁 때 남편을 잃고 평생을 홀로 지내온 이옥순(75) 할머니. 그동안 너무나 많은 고생을 겪은 탓일까. 얼마 전 전신 마비증세가 심해지면서 일어설 수조차 없게 됐다. 할머니의 주수입원인 마늘 까는 일자리마저 잃었다.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인근 요양원에 들어가게 됐지만 매일 천장만 바라보게 된 할머니는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최근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다시 찾아왔다. 홀몸노인 어르신 봉사단이라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할머니는 "같은 처지의 홀몸노인들이 찾아와 말벗이 돼줘서 너무 기쁘다"고 좋아했다.

△홀몸 노인을 돕는 홀몸 노인

북구 한 양로원에서 생활하는 최순녀(80) 할머니에게 최근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홀몸 노인들로 구성된 사랑 나눔 봉사단들. 가족, 친척 하나 없는 최 할머니에게 그들은 좋은 음식, 잠자리보다 더 반가운 존재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지만 이듬해 남편은 일본으로 끌려가고 지금까지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 광복이 되고 남편을 기다린 것이 벌써 50년을 훌쩍 넘었지. 그런데 평생 홀로서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배고픔도 추위도 아니야. 외로움이지."

같은 처지의 홀몸 노인인지라 서로의 아픈 부분을 쉽게 발견하고 또 치유할 수 있단다. 또 서로 말벗이 돼주고, 밥도 먹고 윷놀이를 하며 하루종일 놀다 보면 이들은 어느새 언니, 동생이 된다고 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던 최 할머니에게 그들은 가족을 선물한 셈이다.

"젊은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오지만 대화 상대가 될 수는 없잖아. 사랑 나눔 봉사단은 전부 홀로 사는 노인이어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몰라. 서로 걱정하고 껴안고 울고 얘기를 하다 보면 다시 태어난 느낌이야. 너무 좋아." 할머니는 죽기 전 마지막 행복이라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매일 아침 눈을 감지 못해 야속했다는 이옥순 할머니도 홀몸노인 봉사단이 다녀간 뒤부터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고 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어요

사랑 나눔 봉사단이 생긴 것은 지난 2002년. 봉사단 산파 역할을 한 '정다운 가정봉사원 파견센터(대구 서구 원대3가)' 신은숙 소장은 "홀몸 노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하는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며 "오히려 이분들에게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주자는 취지에서 홀몸 노인 봉사단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홀몸 어르신들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은 전국에서 유일하다. 동병상련의 처지인지라 어르신들에게 쉽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어 인기가 많단다. 3년 만에 서구 지역 봉사단 회원은 40여 명으로 부쩍 늘었다. 조만간 북구 지역에도 사랑 나눔 봉사단이 탄생할 예정이라고 했다.

"만나보면 어찌나 제 처지와 비슷한지. 옛날 생각이 나서 부둥켜 안고 같이 울기도 많이 했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된답니다. 평생 잊고 지냈던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아요."(봉사단 서옥남 할머니)

"그분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지요. 거동도 못하고 식사나 대·소변도 혼자 할 수 없는 분들이니. 한 주에 한 번꼴인 봉사일이 무척 기다려집니다."(봉사단 김분돌 할머니)

사랑 나눔 봉사단 할머니들은 그동안 받기만 했던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이갑생(82) 할머니는 "우리도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하다"며 "앞으로 봉사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사진: 홀몸 어르신 봉사자들은 그동안 사회에 진 빚을 갚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사진은 서구 지역 사랑 나눔 봉사단 회원들. 박노익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