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따라잡기-이종격투기

이종격투기가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종격투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고, 동호회를 만들거나 직접 배우고 있다.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종격투기가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상업성 얽힌 이종격투기는 새로운 스포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 이슈의 배경

"트라키아투사 파비우스여! 건투를 빈다. 바루카 뻗어버려라!"

화려한 사전공연이 관중들을 즐겁게 한 뒤 웅장한 음악 속에 경기장 가운데로 등장한 전사들이 늠름하면서도 격렬하게 싸운다. 이에 흥분하며 주먹을 치켜든 관중들은 자기가 무대에 선 듯 착각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한쪽에서는 누가 승리할지 내기가 벌어지고 있다. 여자 관중들 중 일부는 그들의 근육질 몸매와 강인함에 매력을 느끼고 숨죽이며 뜨거운 시선을 보낸다.

위 상황은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의 분위기다. 오늘날 이종격투기 무대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검투사 경기에서는 무기를 써서 상대를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만약 로마시대 대중이나 검투사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2005년으로 와서 이종격투기를 본다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경기 방식을 차치하더라도 경기의 사회적 위치와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 이종격투기 마니아 현상과 '히포마니아'

이종격투기 마니아는 최근 강력하게 부상하는 마니아 집단으로 결집력이 상당히 높다. 특히 인터넷에서 이종격투기의 인기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만 이종격투기 관련 카페가 1천여 개에 달하고 있다. 몇몇 카페에는 수십 만의 회원이 등록돼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이종격투기 기사의 조회 수가 많은 이유도 높은 관심도와 결집력에서 비롯된다. 격투기 웹진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제 이종격투기 기사는 포털 사이트의 한 편을 점령하게 됐다.

'히포마니아'라는 용어는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와 전차경주에 병적으로 열광하던 관중들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로마 대중들은 검투사 경기가 열리는 원형경기장에서는 배고픔도, 귀족들로부터의 부당한 대우도 모두 잊었다. 거대한 경기장에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관중들은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구경거리에 넋을 잃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검투사가 나오면 환호작약하며 현실을 뒤로 했다. 검투사 경기는 고달픈 삶에서 잠시 해방시켜주는 만병통치약이자 마약이나 다름없었다.

검투사 경기의 인기에 이종격투기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대부분의 팬들에게 이종격투기는 취미생활이다. 그러나 고대 검투사 경기는 로마 대중의 삶 그 자체였다. 마치 중독성 강한 마약이 펼쳐준 환각의 세계와 같았다. 경기를 보는 동안 그들은 손에 빵이 없고, 자신의 농토가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묻어둘 수 있었다.

■ 이종격투기와 검투사 경기 비교

과거 검투사 경기와 지금의 이종격투기는 모두 사회 변화와 사회 자체를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종격투기의 확산 연구도 나오기 시작했는데 해체와 포스트모던이론을 분석틀로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종격투기의 가장 기본적인 성공 조건은 자본의 힘에 의해 설정된 상업주의 이미지다. 화려한 조명과 음악, 선정적인 라운드 걸, 오프닝 쇼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경기 규칙과 요소에 있어서도 상업성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소는 배제시킨다. 이밖에 일원화된 가치 체계의 붕괴와 다양한 가치체계의 확산, 국가와 민족 경계의 허물기, 민족적 영웅보다는 개인적 영웅 만들기, 인터넷 글로벌리즘, 새로운 미디어 환경, 하이브리드 시대, 새로운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스포츠와 오락의 경계가 무너진 스포테인먼트 등이 이종격투기가 대중들에게 침투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이종격투기가 시대의 변화상을 설명한다면 검투사 경기는 로마시대의 사회상을 설명한다. 검투사 경기는 독보적인 국기(國技)이자 사회통합 수단이었다. 정치 입문과 정치 장악력을 위한 훌륭한 도구이기도 했다. 로마에서 관직에 출마하려는 사람이 노예끼리 피를 흘리는 싸움을 대중들에게 선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귀족과 정치인들이 경기를 열지 않으면 국가가 열었다. 제국이 걷어 들이는 수입의 3분의 1은 원형경기장의 축제를 위해 쓰였다. 농토에서 쫓겨나 "부자에게 돈을 내게 하라"고 외치는 농민들에게 빵이 아니라 검투사 경기를 선물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원로원과 시민들의 냉대를 검투사 경기로 날려버렸다. 로마제국이 황금기를 구가할수록 검투사 경기는 더욱 시민들의 일상에 침투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하에서는 1년에 230일 동안 검투사 경기가 열렸다. 일부 황제들은 경기의 지나친 확산을 우려해 축소하려 했지만 권력의 안위를 위해 포기했다. 경기가 감소할수록 폭동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 검투사 경기와 이종격투기 잔혹사

검투사 경기는 점점 잔혹해졌다. 초창기는 단순한 일대일 승부였지만 검투사들을 경기장에 단체로 밀어 넣는 경우도 많아졌다. 좀 더 색다르면서도 화려하고 규모가 큰 경기를 관중들이 점점 요구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사자 사냥, 코끼리들과 기병들 싸움을 원형경기장내에서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원형경기장을 벗어나 호수에서 수천 명의 검투사와 노예들을 동원한 모의해전이 치러지기도 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치하에서는 로마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모의해전이 행해졌다. 전선 50척에 1천900여 명의 노예들이 편을 갈라 서로 싸워야만 했다.

이종격투기도 마찬가지다. 점점 과격한 경기가 선호되고 있다. 레슬링과 유도 등의 기술이 접목되면서 누워서도 싸울 수 있는 종합격투기 방식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가 일본 '프라이드'의 'K-1'추격이다. 'K-1'이 종합격투기 대회를 지원하며 '프라이드'를 지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이종격투기는 '21세기의 스포츠'가 될 것인가

오늘날 이종격투기는 과거 검투사 경기처럼 독보적인 국기가 아니다. 정치 입문의 수단으로 쓰이지도 않는다. 가난한 시민들의 고단함을 씻게 만들어 줄 수단도 아니다. 운 좋게 공짜 표를 구하지 않는 한 경기장에 오려면 입장권도 구매해야 한다. 로마에 피 흘리는 노예가 있었다면 이곳엔 자기 취미를 위해서나 돈을 벌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것을 보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종격투기가 몇 년간 유행했던 희한한 문화 현상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21세기의 스포츠 키워드가 될지 아직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밤늦게 케이블 TV에서 방송되는 이종격투기가 꽤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고, 이종격투기 대회가 열리고 있고, 가끔 이종격투기와 관련한 사건사고가 대중의 눈길을 잡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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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격투기가 사회적 인기를 얻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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